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시사에 대한 글은 제가 지양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문장과 단어를 줄여 씁니다. 하지만 주장은 명확,명쾌하게 드러냅니다.
<들어가며>
2024년 4월. 대한민국은 총선을 치르게 됩니다. 선거 시즌에 지하철에서나 볼 수 있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중요한 행사입니다. 정쟁 외엔 관심이 없는 거대 양당과 권력투쟁에서 밀린 사람들이 만든 신당들, 그리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군소정당, 정치신인들이 그 판의 주연, 조연, 단역입니다.
<서론>
국민 또는 시민에게 선거는 각 지역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그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 - 기존 정치인,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신인들 모두 - 에게 선거는 정치권력을 손에 쥐기 위한 경쟁(투쟁)이며, 향후 4년간 연봉 1.5억 정도를 받는 안정적 직업을 갖기 위한 채용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개인 또는 소속 정당의 이익을 위한 정치행위이고, 제한되어 있는 이익을 좀 더 갖기 위한 경쟁일 뿐입니다.
<본론>
그러기에 그 판에서 내세워지는 모든 대의명분은 허울뿐인, 그리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간판일 뿐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숨기기 위한 껍데기인 겁니다. 선거 시즌이 되면, 이 껍데기가 훨씬 더 화려해지고, 강력해집니다. 이 강력함은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평가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합리적 판단을 하겠다는 유권자들의 다짐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자기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유권자는 아예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 그들의 전략일 지도 모릅니다. 이 전략은 온갖 거짓과 헛소리, (악의적) 개소리를 통해 교묘해지고 그럴싸해집니다. 이것도 안 되면, 예전에 지역감정을 이용해 먹었던 정치인들처럼 유권자들에게 서로 싸우도록 조장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훌륭한 정보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저렴하게 정보망과 기기를 통해 특정 (의도된) 정보를 생성, 전파, 수신할 수 있습니다. 정보의 민주화 시대를 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정보의 민주화도 필연적으로 정보의 남용, 오용이라는 그림자를 갖고 있습니다. 많은 거짓과 헛소리, 개소리가 난무하게 됩니다.
이렇게 탐욕과 그 탐욕을 채워줄 환경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준비일까요?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끌어 당기기 위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유권자를 무관심하게 만들거나 속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당선이라는 승리의 잔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만큼 달콤할 겁니다.
그럼, 이에 대응하여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 속지 않기 위해 - 유권자로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첫째, 냉철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경멸 또는 이에 기인한 무관심' 은 안 됩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그들의 숨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현대 경영학을 창시한 학자로 인정받는 피터 드러커(1909~2005)의 저술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정말이지, 권력을 경멸하는 것은 오직 그것이 한층 더 억압적인 것이 되도록 만든다. 권력은 사용되어야 한다. 권력은 현실이다. 만약 점잖고 이상적인 사람들이 권력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쓰레기통을 뒤지는 넝마주이가 그것을 집어가게 된다. 만약 유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권력을 책임 있게 사용하기를 거부하면, 무책임하고 무능한 사람들이 권력자의 자리를 넘겨받고서 권력의 조종간을 잡을 것이다.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 권력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넘어간다. 잘 해야 그것은 비굴하게 굴면서 전횡을 부리고, 독단적이고 관료적인 출세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간다. (310페이지, 단절의 시대, 피터 드러커)
둘째, 우리 스스로 정보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그들이 말하는 주장이 명확한 근거에 기반한 것인지 철저히 검증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먹고 살기 바쁜 우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철저히 검증하지 않으면, 그들의 거짓과 헛소리, 개소리는 더욱 그리고 계속 난무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여지없이 더욱 팍팍해질 겁니다. 논쟁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서는 우선 그것이 논쟁이 될 만한 것인지 부터 판단해야 합니다. 간혹 흙탕물을 일부러 만들어 내고 그 사이에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애매모호함 속에 의도를 숨기거나 나중에 변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우리가 정확히 간파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말은 언제, 누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또는 무엇)를 통해서 말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셋째, 사람은 쉽게 편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행적과 언행, 현재의 언행을 보면 지금 이후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궤적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만약 그 궤적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면, 그것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맺음>
"그들을 선출할 권리이자 권력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권자겠지요. 다만 권력은 오직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사용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유권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행위[의무]를 다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야 우리는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 주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