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프로젝트 #1
안녕~ 오랜만이다. 그동안 나는 입사를 하고, 월급도 받고 성과도 없는데 성과급도 받고 매우 정신없는 9 to 6 삼성역 출퇴근, 즉 내가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직장인의 삶을 살며 아주 알찬 한 달을 보냈다. 특히 밥을 아주 잘 먹고 있다. 버는 돈으로 열심히 운동도 하고 일렉 기타도 배우던 와중에 급하게 그려온 그림 한 장을 소개한다.
1년 전 2023년 1월 11일에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많은 영감을 받았고, 해외에 있을 때 꾸준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6개월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당장 닥친 일에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출국 1주년이 다가오고 있길래 1월 11일을 데드라인으로 삼고 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음~ 1년 전 그날은 정말 생생하다. 사실 굉장히 심란하고 무섭고 우울했다. 미국에서의 날들 중 가장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한 날이었지만, 그것마저도 그립다. 그날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나는 텍사스 주의 오스틴이라는 도시로 떠났는데, 서울에서의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에 내려서 입국심사를 하고 오스틴 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입국심사를 통과를 못해서 경찰 아저씨와 디텐션 룸(정신과 시간과... 진실과 생각의 방)으로 끌려(?) 갔었던, 첫 단추 제대로 잘못 꿰었던 스토리가 있는데, 이 한 줄로만 설명을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운 내용이지만 길어지니까 쓰진 않겠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11일에 미국 땅을 밟긴 했지만, 오스틴에 도착했을 땐 막 12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사진 2장이 11일 날 미국에서 찍은 사진 전부다. LA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사진을 찍고, 오스틴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두 번째 사진을 찍은 그 사이의 시간 동안 한 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는데, 그 상황이 딱 드러난 것 같아서 재밌다. 정신없이 움직였던 하루를 보내고 저 브리즈웨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오스틴 다운타운을 바라보는데,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을 하늘이 너무나 넓었고, 순식간에 너무 외로워졌다. (나는 외롭다는 감정을 많이 느껴본 적이 없는데, 이런게 외롭다는거구나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 우리 집에 있었는데 눈 깜빡하니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여기서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싶고 그냥 외계에 온 것 같았다. 진심 저기서 뛰어내릴까 싶었다ㅋ...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같은 장소에서 오스틴을 바라봤을 땐, 그 우울했던 도시의 풍경에 약간의 생기가 도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어렴풋이 여기서 잘 지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 후 일정이 있다는 룸메이트를 따라 캠퍼스로 처음 들어갔는데, 걸어가면서 내 좌편으로는 텍사스 대학교의 유명한 시계탑(UT Tower)이, 우편으로는 저 멀리 인터넷에서만 봤던 텍사스 주 청사(Texas Capitol)을 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생각했던 스케치는 왼쪽과 같다. 항상 그렇듯 평범한 정면뷰에 답 없는 색 조합이 영 맘에 들지 않아서 갈아엎고 새로운 구도를 도전해 봤다. 이런 바닥뷰는 빠리의 강아지 그림(아래)을 그릴 때 처음 시도했었는데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 좀 더 강조되는 효과가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공산주의뷰라고 부른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생각보다 까다롭다. 이 자신감 없는 선들에서 내 시행착오가 느껴지는가?!
색감은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인데, 이번엔 Arrigo Verderosa의 무드보드에서 색깔을 거의 그대로 따왔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앞으로 색칠할 때는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참고하기로 했다.
(출처 : https://www.artstation.com/artwork/Bm4wk8 )
텍사스 대학교의 상징색이 어두운 주황색(Burnt Orange)이라 그런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또 실제로 그런 느낌은 아니긴 하지만, 관념적으로 나에게 텍사스는 서부 영화에 나오는 노을, 석양의 이미지였어서, 텍사스에 처음 도착했던 그 기분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사실 오스틴에 도착했을 땐 겨울이라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다닐 순 없었다. 그렇지만 금방 따뜻해진다.
어쨌든 급하게 그린 것치고는 꽤 마음에 든다. 앞으로 오래 걸리더라도 꾸준히 오스틴에서의 추억을 종종 그림으로 우려먹을 것이다. 시리즈로 만들어서 이번에는 낱장 프린팅이 아니라 책으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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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대학교가 좋아해줬다. 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