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려고 키보드 두들기는 방법은 알겠는데
27살. 나는 사회 초년생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곧 2년 차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허둥대는 신입 티를 못 벗어난 중고 웹서비스 기획자를 맡고 있다. 무식한 만큼 용감했던 취업 준비부터 밥 대신 돈을 먹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스타트업은 원래 이런 건가요' 매거진을 통해 가감 없이 적어보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24살이 되었다. 당시의 나는 몹시 지쳐있었는데 굉장히 시시한 이유였다. 그냥 더 하기 싫었다. 다시 적응할 용기가 없어서 휴학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졸업증명서 한 장만 쥐고 스트레이트로 대학 밖으로 용수철처럼 튕겨 나왔다.
자고 싶을 때 눕고, 너무 누워있었다 싶을 때 슬그머니 일어나는 파렴치한 백수 생활을 즐겼다. 하나, 둘 취업에 성공하여 떠나는 친구들을 막연히 잘됐다고 생각하며, 방구석 게이머로 키보드만 두들기다 보니 순식간에 1년. 아무것도 쥔 게 없는 25살이 되어있었다. 위기감 한 줌도 없이. 이런 나에게 위안이 되는 대학 동기 친구가 있었다. 같은 방구석 게이머 친구 고미. 흔한 아르바이트 한 번도 하지 않고 게임을 함께 했다.
그러다 봄의 끝자락.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평생 나와 백수로 지내줄 것 같았던 고미가 먼저 떠난 것이다. 애써 웃었지만 그 순간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이러다 대학 동기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게 내가 될 것만 같았다. 이대로 질 수 없다고 이상한 곳에서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사실은 마음에 없던 취직을 앞당기게 된 계기는 곧 다가올 여름 문제가 더 컸다. 아직 집에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만 되면 아토피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 고미의 취업 소식과 땀 흘리며 보내기 싫은 여름이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던 나를 취직하게 만든 아주 사소하고 시시한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기로 했다. 의욕이 앞섰던 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시간 단위로 빡빡하게 스케줄러를 색칠했다. 그러나 작심삼일도 아닌 작심일일. 스케줄을 준비한 다음날 바로 실패했다. 오전 9시에 기상한 뒤 오전에 자기소개서를 다듬고, 점심을 먹은 후 포트폴리오를 다듬는다는 계획이었는데 포트폴리오 대신 11시가 다 되어가도록 이불을 다듬고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아침잠이 많아서 일찍 기상하는 건 힘들었다. 그래서 고민하다 몇 가지의 규칙을 세웠다.
1. 기상 시간 및 취침 시간은 자유롭게 정한다.
2. 하루의 목표치는 정확히 지킨다.
3. 하다가 힘들면 더 매달리지 말고 게임을 한다.
4. 만족할 때까지 게임을 하고 다시 준비를 한다.
남이 보면 이게 무슨 취업 준비 스케줄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오로지 취업 준비에 필요한 자료들에만 집중하는 방법도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얽매일 필요도 없다. 룰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다. 룰이 나를 맞추게 만든 거다. 그리고 이 방법은 나에게 꽤나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몇 시간을 앉아서 자료를 준비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되면 깔끔하게 멈추고, 답답한 마음을 게임에 1~2시간 열정을 쏟아내고 나면 다시 준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채워졌다.
그로부터 한 2주가 지났다. 스스로의 규칙에 잘 맞춰서 나름대로 30% 정도는 진행한 것 같았다. 어느 때처럼 취업 준비 자료를 준비하던 나에게 고미의 연락이 왔다.
"있잖아, 우리 회사…. 복지포인트가 있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