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이 느낀 첫 감정
돈에 대한 가치관. 돈은 그저 돈일뿐이라 생각하던 형태 없는 가치에서 수그러드는 고개의 무게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갔다. 돈이 나에게 있어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전에는 부끄럽게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도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으며, 아무런 걱정 없이 대학교를 다녔다. 과연 물욕이 없었던 걸까, 참으며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걸까. 참으로 위기감 없는 나날이었다.
고등학생일 때에도 주기적으로 용돈을 받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요청해서 소비했었다. 용돈으로 밥도 먹고, 친구와도 놀고, 생활에 불편함을 느껴본 적 없었다. 사람은 적당한 결핍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니까.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만든 통장. 처음 만든 체크카드. 여전히 소비 패턴은 고등학생 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불편함 하나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건 결국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나태함을 불러왔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기 1년 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교수님에게 기획 인턴 제의를 받았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기획 인력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경험 쌓으면 취직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덥석 받았다. 분명 인턴 이랬는데 근로계약서를 보니 시간제 아르바이트다. 교수님 추천으로 왔으니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내빼기도 애매해 그대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최저시급으로 월 120~160만 원 사이의 금액 정도를 받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적은 금액에 한숨을 여러 번 쉬었지만, 그래도 몇 달은 용돈을 안 받고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기뻤다.
직접 돈을 벌어보니 소비의 제약이 용돈에만 갇혀있던 이전보다 넓어진 점이 굉장히 좋더라. 이래서 사람들이 일을 하는구나. 짧았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졸업을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나태한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1년도 함께 철없이 보냈다. 준비할 새도 없이 맞이한 25살의 초여름. 첫 직장. 기획 신입. 한창 자존감이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을 때 스스로 부른 연봉 2400만 원. 월 200만 원 받으면 괜찮겠지 안일하게 생각하고 맞이한 4대 보험 세금 폭탄. 그렇게 통장에 들어온 180만 원. 갑자기 현실로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난 이제 이 돈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으로 미래를 걱정했다. 30살의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자기소개서의 5년 뒤, 10년 뒤의 커리어를 억지로 상상하며 적어본 게 아닌, 정말 현실적인 금액으로 집안 도움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도달할 내 30살의 미래를. 정말 어두웠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목표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이 선택이 옳았는지. 출근을 위해 잠들어야 하는 시간 동안 눈물로 지새웠다. 너무 처참한 기분을 계속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내 첫 월급에 대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