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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먹 Apr 10. 2021

주문 안 한 신용카드 나왔습니다

신용점수가 떨어진다고는 말 안 해줬잖아요

한도 10만 원 직장인 신용카드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는가? 터무니없지만 그게 나의 이야기다. 먼저 신용카드라 하면 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갚을 돈이 없어 신용불량자가 된 이야기들이 떠오르곤 한다. 마치 사용하면 되돌릴 수 없는 사탄의 카드 같은 이미지였다. 취직한 회사에서는 대학생 시절 사용한 주거래 은행을 사용할 수 없었고, 새로운 급여 통장을 만들어야 했다. 꿀과 같은 점심시간, 귀찮은 몸을 이끌고 회사 근처의 은행을 찾아갔다.


"인터넷 뱅킹 사용하시죠?"

"…아, 네네."

"엄청 먼 곳에서 직장을 다니시네요. 교통비 할인되는 신용카드는 어떠세요?"

"신용카드요? 아뇨, 체크카드 쓰려고요."

"그럼 체크카드처럼 쓸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카드는 어떠세요?"

"네?"


집요한 권유였다. 아무튼 체크카드란다. 체크카드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 교통비 10% 할인이라니.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계산해보니 달마다 최소 8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 어설프게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훤했는지 계속 설명이 이어졌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대로 홀랑 넘어갔다. 와중에 과소비를 걱정했던 나는 한도를 10만 원으로 설정했다. 


하이브리드 카드는 엄연히 소액신용결제가 가능한 '체크카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카드는 지정한 금액 이하는 체크로 결제하고, 초과분은 신용으로 결제하는 카드였다. 결론은 신용카드란 소리다. 체크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으니 완전히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실적을 위해 속아 넘어간 기분. 그렇게 신용 한도 10만 원 카드가 탄생했다.


10만 원으로 한도를 자르면 충분하겠지? 출처 @pixabay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체크카드만 사용하던 대학생 때에는 신용 등급이 4등급이었는데 갑자기 6등급까지 수직 낙하했다. 신용카드를 만들자마자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건가? 쇼크에 빠져 주변에 물어보러 다녔지만 신용카드에 대해 잘 아는 친구가 없었다. 검색해보니 초반에는 충분한 결제 내역이 없어서 신용 등급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당시엔 얼마나 무서웠는지. 금융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잘 사용하다 보면 신용등급도 다시 오를 거라 믿으며 그럭저럭 카드를 잘 사용해나가는 듯했으나 결국 일이 터졌다. 교통비가 10만 원을 넘어가는 바람에 한도가 모자랐다. 기존 가지고 있었던 체크카드와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며 보내기로 했다. 그다음 달도, 다음다음 달도.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기능이 혼용되어 있으니 점점 결제되는 내역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체크카드 기능을 해지해버렸다. 체크카드 기능을 없애니 정말 10만 원만 결제 가능한 카드가 되었다. 그다음은? 당연히 시작됐다. 지옥의 한도 부족.


직장인이 한도 10만 원으로 1달을 살아가는 방법? 없다. 위에 말했듯 교통비만 8만 원이 넘는다. 그 달을 사용한 금액을 미리 결제할 수 있는 선결제 기능으로 살았다. 부족한 한도를 버티기 위해 선결제, 결제, 선결제, 결제, 선결제, 결제. 신용카드 하나로 이렇게 쇼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경이로울 정도다. 도움을 빌려 서류를 준비하고 결국 한도를 100만 원까지 늘렸다. 이렇게 멍청하게도 신용카드를 쓸 수 있다. 사탄의 카드도 별 거 없다. 




이게 뭔가요? 불타는 네 신용이란다. 출처 @pixabay




현재는 1000만 원까지 한도가 늘어났고, 꾸준히 사용했더니 계절마다 등급이 한 계단씩 올라서 신용등급도 3등급까지 올라갔다. 신용점수제로 바뀐 이후로는 신용등급 올리는 재미를 잃어서 몇 점인지는 모르겠다. 840점대였던 것 같다. 당장 대출받을 일도 없지만 추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먼저 점수를 미리미리 준비해두자는 마인드. 점수가 오르는 것을 보며 사회에서 일을 잘하고 있구나 싶은 기분도 있다.


처음 카드를 만들었던 때부터 현재까지 신용카드로 전월 실적의 기준인 30~40만 원의 지출을 유지하고 있다. 어플로 종종 사용한 금액을 체크해주면 과소비할 일도 거의 없었다. 예기치 않게 생겨난 카드지만 오히려 안정적인 소비 패턴을 맞추는 기준이 된 격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한 달 동안 자신이 정한 금액 내에서만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게 가장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못 지켜도 좋다. 자신에게 맞는 패턴은 찾아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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