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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때리는 몽상가 Apr 06. 2023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다시 시작하는 일기

갑작스럽게 글을 다시 쓰려니

타자 위에 손을 올리는 일부터 힘겹게 느껴진다.


혼자만 보기 위한 글을 쓰는 것엔 무척 익숙하다. (사실 이 마저도 나만을 위한 글이 될 터)

졸업 논문도 지도교수님과의 소통이 전부였기에,

오히려 지금 적어나가는 이 글이 더욱 힘겹게 느껴지는 건

그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서였나.


하지만 제목에 떡 하니 영화 제목을 적어둔 것은,

글을 시작하려면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주제로 잡고 써나가야 동력을 얻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지금 써 내려가는 글은 영화에 대한 비평도, 영화를 소개하는 글도 아니다.

감상문에 해당은 할 것 같으나..

다시 시작하는 글이기에 짧게 정리하고자 한다.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2년 간의 방황.

제목만 보고 "나도 죽어가는 소년에 해당하겠지?"라는 만연한 생각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그 방황의 시기마저 이젠 6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에 관한 영화를 찍겠다는 꿈을 안고

혹은 앤디 워홀의 겉모습에 반해 나도 언젠간 팩토리를 만들겠다는 부푼 꿈을 품은 채

영화를 전공하게 되었던 것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오프닝부터 나를 사로잡은 영화였던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관람하게 만들었던 영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존 번달이 연기한 역사 선생님 미스터 맥카시와 토마스 만이 연기한 주인공 그렉과의 대화다.


내 곁을 떠나가는 이를 둔, 나를 두고 떠나갈 채비를 하는 이를 보면

그게 아무리 준비된 일이라고 해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이별은 다가올 것이며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 선생님 맥카시는 그렉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 아버지는 술에 취한 덩치 큰 나쁜 사람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아빠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70년대 독일 노래를 전부 알고 있었고 펍에서 그 노래들을 불렀다."


떠나간 이에 대한 감상 젖은 회고가 아닌,

하나의 깨달음.


떠나간 후에도,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펼쳐질 수 있다는 것.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나간다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써나갈 수 있다는 것.


내게 이 말은 무척 위안이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 이별은 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마음의 안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새벽 감정에 젖어 쓴 글처럼.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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