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퇴직공무원> 3.
"야! 누구는 일이 좋아서 다니냐? 나도 먹여 살릴 식구만 아니면 그만뒀다."
퇴직을 알리는 문서가 난 후, 함께 일한 적이 있던 직장 선배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통화를 마치고도 한참 동안 내 귓가에 맴돌던, 그가 남긴 말이었다.
'그렇지. 나는 책임져야 할 식구가 없으니, 조금 더 쉽게 그만둘 수 있었겠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먹여 살릴 식구가 없었던 내게도 퇴직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내가 누리던 모든 것과 안정적인 삶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고, 10년간 쌓아 올린 나 자신을 내 손으로 버리는 일이었다. 나의 깊은 고민을 미처 짐작해보지 못한 그만의 생각이라 여겼다. 그래서 조금 억울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 또한,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없는 나만의 입장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퇴직을 결정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용기 있는 선택이라 응원해주는 이들과, 무모한 선택이라 걱정해주는 이들이었다. 용기와 무모, 응원과 걱정, 모두 맞는 말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것 하나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긴 여정이 시작되고 나면 오롯이 혼자 남는다는 것이다. 달리기 경주에 비유하자면 달리기를 시작한 순간부터는, 끝까지 잘 달려가는 것과, 달리면서 만나게 될 장애물들을 뛰어넘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탕!"
그렇게 혼자만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만난 장애물은 생각지 못한 의외의 감정이었다. 그 뜻밖의 감정은 「먹고사는 일은 숭고하다」는 명제를 내걸고 내게 시위하듯 일었다. 바로, 죄책감이었다.
첫 시위는 지인들을 만났을 때 일어났다. 1년이 갓 지난 아기를 시부모님께 맡겨두고, 자동차로 한 시간 넘는 길을 달려 출퇴근하는 친구.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전업주부로 살다가, 갑자기 남편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위기에 놓여 돈벌이를 알아보고 있다는 친구.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계약을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하는 친구.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마음이 무거웠다.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는 내 말이 친구들 귀에는 얼마나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까, 마흔이 다 되어 인생의 2막을 시작하겠다는 내 모습이 친구들 눈에는 얼마나 철부지로 보였을까? 나는 무언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배부른 소리를 한 죄,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찾는 죄, 뭐라 죄목을 붙여야 할지 모를 죄.
몇 달이 지난 후, 두 번째 시위가 일어났다. 함께 일했던 동료가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왔다.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나는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너도 잘 지내느냐는 물음에, 옛 동료는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 내 인사이동을 앞두고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고 했다. 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찾아왔다. 인사이동, 승진, 성과, 폭풍이 시도 때도 없이 휘몰아치는 전장에서 나만 탈출한 것 같은 기분의 죄.
죄책감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어느 날, 허리가 굽어 앞을 바로 보지 못하는 할머니 한 분이 박스가 잔뜩 실린 리어카를 힘들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30도가 훌쩍 넘는 기온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왜 죄책감을 느끼는지, 이유도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알량한 죄책감을 느낀 죄.
그리고 요즘, 나는 또 다른 시위 한가운데 서 있다.
내 쏘울 메이트는 계약직 근로자이다. 그는 내 정신적 지주이자, 나를 먹여 살리고 있는 물질적 지주이다. 공부를 잘 하진 못해도 공부하는 일이 제일 재밌었다는 그는(뷁 -_-;;), 박사학위를 마치고 모 연구소에서 포닥(Postdoc: Postdoctoral researcher) 과정 중이다. 여느 취업준비생과 마찬가지로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고, 가고자 하는 이들은 넘쳐난다. 소위 박터지는 경쟁 속에서 하루살이를 한다. 1년 단위 계약이 다섯 번 반복되기 전에 안정된 자리를 찾아야 하고,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월세 걱정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 그의 계약이 종료된다면, 우리는 생계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워낙 담담하고 소란스러운 법이 없는 사람이라, 티를 잘 안 낸다. 그런데도 요즘 그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나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하루하루 일해 돈을 벌어오는 동안, 나는 한량처럼 글을 쓰고 사색을 한다. 만약 내가 퇴직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의 진로를 고민할 뿐, 생계를 걱정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괜찮은 척하는 그의 얼굴 앞에서 나는 가장 큰 죄책감을 느낀다.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 그 무겁고 커다란 짐을 그 사람에게만 짊어 지운 죄. 진심으로 미안하다.
"내가 나중에 당신 호강시켜줄게."
간절한 소망을 꾹꾹 눌러 담은 말을 장난스레 건네본다.
'그 나중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은 혼자서 마음속으로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