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높이 구두

<자의적 퇴직공무원> 2.

by 이막내작가

'아...... 그 구두만 있었어도......'

최부록과 우현은 잃어버린 키높이 구두를 아쉬워한다.

그러나 이내 깨닫는다.

'아니지... 그깟 구두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이미 내 마음속에 키높이 구두가 있는걸.'

최부록과 우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 2005년 4월 14일 방영, KBS 「올드미스 다이어리」 중에서 -




어릴 때부터 내 자존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소심한 성격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잘 보고 낯가림도 심했다. 유년시절에는 나와 달리 성격이 활발했던 세 살 터울 언니 뒤에 숨어 지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꽤 활달해졌지만, 그렇다고 자존감이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자존감이라는 것에 대해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눈뜨면 학교에 가고, 눈감으면 꿈나라로 직행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까불대며 놀기 바빴고, 가끔은 학업을 쫒아가느라 바빴다. 빗소리가 주룩주룩 들려오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나는 누구인가?'라고 뜬구름 잡는 질문을 던져본 적은 있으나, 자아존중감,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내가 나를 사랑하고, 믿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되면서부터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20대의 꽃다운 나이를 보내면서도 나는 내 장점보다 단점에 주목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에 남 탓만큼이나 내 탓도 잘했다. 내 힘으로 어찌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자책을 했다.

'내가 그렇지, 뭐.'

그러던 자존감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것은,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면서부터였다. 자격증을 따고, 시험에 합격하고, 하나씩 이뤄내는 게 생기면서 스스로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20대 후반, 공직생활에 발을 딛으면서 나는 성장했다. 업무에서 인정을 받을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록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어느 순간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30대의 대부분을 나는 내가 자존감이 제법 높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내 자존감이 분명 잘 자랐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것은 진짜가 아니었다. 내 자존감이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은, 퇴직을 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느꼈던 이유는 내 직업에 있었다. 지난 10년 6개월 동안 내 발에는 공무원이라는 키높이 구두가 신겨져 있었던 것이다. 공무원, 그것은 내 발뒤꿈치를 지면에서 9cm 들어 올려 내 다리를 더 길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주는 키높이 구두였다. 만약 내 직업에 '사'자 들어갔다면, 나는 마치 15cm 힐을 신은 듯 꼴사납게 으스대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직업이 내가 될 순 없었다. 학력이 내가 될 수도 없고, 부가 내가 될 수도 없다. 우리 자신을 제외한 그 무엇도 우리가 될 순 없다. 그럼에도 내 직업은 지난 10여 년 동안 내 자아가 되어버렸고, 그것이 나였고 내 키높이 구두였다. 키높이 구두에서 내려서고 나서야, 나는 본연의 나와 마주했다.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머리 위에서 나를 빛나게 해 주던 「국가직 공무원」이란 반짝이는 간판을 내리자, 나는 조명 꺼진 무대처럼 초라해졌다. 내세울 것이 모두 사라졌다.


공식적인 백수가 되고서, 처음 1년은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잔뜩 움츠러든 내 자존감을 사람들 앞에서 숨기기 바빴고, 무너지는 나를 붙들고 스스로 어르고 달래는 날들이 이어지던 때의 일이었다.

"아니, 이렇게 젊은 처자가 왜 백수야?"

어느 날,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내게 질문을 던진 순간, 나는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찌나 해맑고 악의 없어 보이던지, 마음속에 막혀 있던 무언가가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백수에게 '왜 백수인지' 대놓고 묻는 질문이 오히려 내게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주었다. 이 젊은 처자가 정말로 왜 백수인지 궁금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질문이었다. 내가 백수이건 아니건, 어르신 눈앞의 나는 그냥 나일 거란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부끄럽지 않았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 물어오면 마음이 먼저 주춤한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수없이 던졌을 그 질문 앞에 겁먹은 내가 있다. 그럼에도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질문 앞에 작아지려는 나를 억지스레 세운다. 그냥 너를 솔직하게 답하라고, 너는 너일 뿐이라고, 무엇을 두려워하냐고, 토닥거려주는 어른이 내 안에 자라고 있다. 키높이 구두를 벗고서 찾은 진짜 내 자존감이다. 가끔씩은 '아...... 그 구두만 있었어도......' 하고 예전의 키높이 구두를 아쉬워할 때도 있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진짜 키높이 구두를 신고서, 아무 자랑할 것 없는 지금의 나를 괜찮다 자뻑한다. 그럴 땐 종종 마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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