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감(靈感) 어디갔수?
기이한 경험이었다.
잠이 깬 새벽... 일어나기는 싫고, 그렇다고 다시 잠이 들 것 같지는 않은 그런 새벽이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떠오르는 생각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다.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랐다. 해야 할 일이라던가, 날이 밝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은 얘기라던가, 내일 만들어 볼 반찬 메뉴라던가.
그 뒤로도 몇 가지 상념들이 더 떠올랐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한동안 열심히 써 내려가다가 막혀 있던 내 소설에 다다랐다.
단편소설 분량의 1/3 정도 쓰다가 멈춰버린 이야기를 다시 머릿속에서 읽어나갔다. 그러다 두 인물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다른 방법으로 써볼 순 없을까 질문을 던졌고... 바로 그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평면에 놓고 이리저리 끼워 맞추던 퍼즐 조각들이, 별안간 3차원 공간으로 떠올라 입체적인 육면을 드러냈다. 그 3차원의 공간에서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퍼즐들이 맞춰졌다. 우와! 금방 이거 뭐지?!
이것은 영화에서 보았던, 예를 들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탐정 주위에서 여러 단서들이 재배치되더니 드디어 범인이 드러나는 장면이랄까.
난생처음 겪는 이상한 경험에 잠이 화들짝 달아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박!!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곧장 소설 파일을 클릭하려다, 이 기운이라면 아침까지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았다. 먼저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물을 끓이고 티백을 우려냈다. 향긋한 꽃향이 났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홀짝이고 있으려니, 문득 새벽의 고요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와... 좋다.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본지가 얼마만이지? 고요하고 캄캄한 창밖 도시를 내려다보다가 맞은편 아파트의 불 켜진 창문 개수를 세어보았다. 한밤중에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을 보고 있으니, 그 불빛 아래에 있을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홀짝홀짝. 차를 몇 모금 더 마셨다. 의자에 앉았다. 그제야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아, 맞다, 소설. 그래, 자 이제 소설... 뭘 어떻게 고치기로 했더라? 음... 맞아. 인물이 독백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바꿔보기로 했지? 또... 고양이가 등장하기로 했지? 고양이는 언제 등장하더라? 음... 그리고... 어라... 뭘 쓰려던 거지?
이런... 다 사라졌네.
영감(靈感)이 사라졌다.
영감(靈感)은 별안간 왔다가, 문득 사라져 버렸다.
✽ 영감(靈感)이란,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 것이 있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