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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Apr 20. 2023

잔인한 봄

: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남겨진 모든 이들에게.

 잔인한 봄이었다. 14년 전 갑작스레 아빠를 떠나보내야 했던 봄이 그랬다. 올봄에는 내 32년 지기 친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은 어디를 둘러봐도 '봄봄봄'이었다. 싱그러운 연둣빛 잎들과 형형색색 꽃들이 아름다워 미칠 지경이었다. 또 한 번 잔인한 봄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참 좋은 계절에 가셨다' 생각했다. 부고를 듣고 달려오는 이들의 오고 가는 길이 춥지 않게, 덥지 않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둘러보라고 이 좋은 계절에 가셨구나,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친구의 아버님을 뵌 건, 단 두 번뿐이었다. 10대에 한 번, 40대에 한 번. 다음번에 다시 친구의 아버님을 뵙게 될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상상했었다. 이런 자리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장례식장에 앉아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친구로부터 14년 전 꿈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14년 전, 내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을 다녀간 친구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에 다녀간 후, 꿈을 꿨는데 꿈에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너무 슬퍼 흐느껴 울었다고 했다. 현실이 되어버린 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나도 종종 아빠가 나오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빠가 내 옆에 있어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아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뻐 눈물이 나곤 한다.


 아깝지 않은 죽음이란 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떠나간 이의 삶은 언제나 아깝고 안쓰럽지만, 나는 떠나간 이보다 남겨진 이들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남겨져 본 적이 있기에, 남겨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서, 남겨진 이들 걱정이 더 크다.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 슬픔들도 있다.

 며칠 전, 세월호 사건 9주년이었다. 9년 전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향해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TV에서 보았다. TV를 보다가 바라건대 저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 끔찍한 생각을 간절히 해버렸다. 잃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남겨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 무례하고 잔인한 사람들이 언젠가 겪게 될 상실에 대해, 남겨짐에 대해 상상했다.

 

 나는 '남겨진 이'다. 남겨진 이들이 살아내야 할 삶은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누군가는 가슴 한 구석에 못을 하나씩 박아놓고 살아가는 거라고 말했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쓴 '위지안' 작가는 '어떤 죽음은 누군가의 가슴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난다'라고 했다. 그렇게 가슴속에 박힌 못 하나씩 영원히 빛날 별 하나씩을 품고 사는 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남겨진 이들이게, 이 아름다운 계절에 떠나가야만 했던 사랑하는 이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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