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퇴직공무원> 5.
"와! 여기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정말 좋으시겠어요."
일을 하면서 심심치 않게 들어왔던 얘기다. 그런 질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많지 않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 대답 아닌 대답을 하면서 그저 웃는다.
"경치가 좋죠?"
내가 근무했던 기관은 업무 특성상 외진 곳에 위치한 근무지가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근무지는 전라북도 군산의 어느 산이었다. 레이더를 운영하는 곳이라 산꼭대기에 사무실이 있다. 어느 날 외부기관에서 업무차 방문한 사람이 경치 좋고 공기 좋다는 이유로, 내게 던진 말이었다.
"와! 여기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정말 좋으시겠어요."
공기 좋고 경치가 멋진 건 사실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구구절절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다른 대답을 찾았다. 뭐... 나쁜 의도로 한 말도 아니고, 더군다나 흐뭇하게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 사람의 기분을 굳이 망치고 싶지 않았다.
"경치가 좋죠?"
사무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야, 말해 뭐해~~! 저녁 해가 질 때면,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금강하구둑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검은 실루엣 사이사이로 일정하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 오묘한 빛깔로 물든 하늘에 양떼구름이 몰려오는 날이면, 그 장관에 넋을 잃을 만하다. 날씨가 좋고, 혼자서 일하는 휴일근무 때, 해 질 무렵 믹스커피 한 잔을 타들고 사무실 복도 끝 테라스로 나갔다. 달달한 커피를 홀짝이며 노을 진 하늘을 혼자 독차지해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곳이었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거기에서 끝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진짜 일 할 맛 나겠네요!"
네에?! 뭐라고요?!! 이번에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알만 굴리고 있는데,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동료직원이 나섰다.
"여기서 한 번 근무해보시면, 그런 얘기 못 하실 텐데~~."
펑! 사이다!! 짬밥 있는 동료직원의 속 시원한 대답이었다.
해발 약 230미터의 산 정상에 위치한 근무지는 출퇴근이 쉽지 않다. 다행히 사무실까지 올라갈 수 있는 포장도로가 있지만, 폭이 좁아서 오르내리는 중에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을 만나면 난감해진다. 그나마 봄, 여름, 가을에는 출퇴근에 큰 문제가 없는 편이다. 문제는 겨울이다. 서해안에 위치한 곳이라 겨울이면 눈이 자주 내렸다. 눈이 쌓이면, 제설작업이 되어 있지 않은 산길을 차로 올라갈 수 없다. 그때부터 출근은 겨울산행이 된다. 산 아래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해놓고 트렁크를 연다. 이런 비상상황을 대비해 트렁크에는 항상 등산화가 실려 있다. 신발을 갈아 신고, 아이젠(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발 바닥에 부착하는 뾰족한 쇠붙이)까지 부착하고서야, 출근 준비가 끝난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보통 걸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눈길을 해치고 드디어 정상에 올라서면, 패딩점퍼 안은 땀으로 흥건하고 온몸은 기진맥진한다. 산 정상에서 김밥이나 까먹고 쉬었다가 하산하고 싶지만, 무슨 소리! 현실은 8시간 근무의 시작이다. 대설특보가 예상되는 날이면, 비상근무 순번자는 애당초 퇴근을 하지 않는다. 깜깜한 새벽, 가로등 불빛도 없는 눈 쌓인 등산로를 혼자서 걸어 올라올 강심장은 없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출퇴근을 직접 경험해본다면, 생각처럼 좋은 근무지가 아니란 걸 알게 될 텐데.
물론, 근무자가 아닌 이상 그곳의 특수한 상황을 알 수 없다. 쉽게 상상해볼 만한 상황도 아니다. 그러니, 좋은 경치가 눈에 먼저 들어왔을 수 있다. 나 역시, 입사 초기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해발고도 500미터 산 정상에 위치한 어느 근무지에 출장을 갔던 때였다. "여기, 경치가 너무 좋아요." 고구마처럼 목이 콱 막히는 신입직원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날 나는 하마터면 그곳 대장님에게 스카우트될 뻔했다. "그래? 그럼 다음 인사발령 때 00 씨, 여기로 와야겠네." 헐...... 그... 그 얘기가, 그... 그렇게 되나요?
그 자리에 직접 서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입사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좋아하는 구름과 하늘만 보며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하늘보다는 컴퓨터 모니터와 공문서를 더 많이 봐야 했다. 퇴직을 결심하면서, 안정된 현실보다 꿈을 쫓아가면 가슴 뛰는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설렘보다 두려움 때문에 가슴이 더 자주 뛴다. 이젠 작가 등단만 하면 행복할 것 같다. 과연, 정말 그럴까?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의 산문집에서 「자신은 먹고살기 위해 글을 쓴다. 즐거워서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고백을 읽었다.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사는 그가 부럽다. 진심, 부럽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때면, 좋아 보이는 것들만 보일 수밖에. 그것이 늘 숙제인 것 같다. 퇴직을 하고 나니 그곳에서 힘들었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좋았던 기억들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 또렷해졌다. 어떤 기억들은 더 미화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10년 넘게 몸담았던 자리조차도, 떠나고 나니 좋았던 것들만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들이 때로는 얼마나 미련하고 가벼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좋아 보이는 곳을 바라본다. 직접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두 팔을 허우적대고 두 다리를 첨벙거리며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혹여, 목적지까지 운 좋게 잘 도착하여, 그래서 그 자리에 직접 가봐야만 알게 되는 것들을 발견하더라도, 지금의 목마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반대로,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터널 속에서 마음이 고단한 날에는, 이 길을 선택하던 때의 간절함을 기억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