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퇴직공무원> 6.
퇴직을 알리는 문서가 나던 날, 사무실 창밖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소복이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퇴직을 몇 년 앞둔 나이 지긋한 선배님이 말씀하셨다.
"바깥세상은 많이 추울 텐데."
조직에 몸담은 시간이 나보다 20년은 더 되신 선배님이 까마득한 후배에게 건네는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바깥세상. '공무원'이란 간판 대신,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세상. 차곡차곡 쌓이는 호봉 대신, 능력대로 먹고사는 세상. 선배님은 그 세상이 많이 추울 거라 했다.
창가에 서 있는 선배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 추위가 너무나 막연하게 느껴져서, 마치 따끈따끈한 방바닥에 깔린 이불속에 앉아 눈보라를 상상하는 기분이었다.
"꿈이 뭐예요?"
공직생활 10여 년 동안,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인사이동으로 인해 새로 발령받은 근무지 회식 자리에서 처음 만난 직원이 내게 물었다. 나는 상대방의 표정을 살폈다. 질문의 의도를 짐작해보려 했다. 잘 모르겠다. 주변은 몹시 시끄러웠고, 특별한 의도 없이 던져졌을지 모를 질문에 나는 왠지 진짜를 대답해보고 싶었다.
"제 꿈이요? 5년 안에 퇴직하는 게 꿈이에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시 질문을 던졌다.
"퇴직하고 뭐 할 건대요?"
"글 쓰고 싶어요."
몇 년 후, 나는 말한 대로 꿈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 바깥세상에서 4년째 살아가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누구나 언젠가는 퇴직을 한다. 자신이 속했던 조직의 울타리를 나와서 바깥세상에 덩그러니 서게 된다. 조금 먼저 이곳에 나온 사람으로서 감히 말할 수 있다. 바깥세상은 정말 춥다. 눈 속에 파묻힌 발은 시리고, 칼바람에 몸을 움츠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또, 바깥세상이라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춥기 때문에, 눈이 펑펑 내리기 때문에, 그래서 눈사람을 만들고 하얀 눈밭을 뒹구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바깥세상 역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낙관적일 수만도 없고, 두려워할 것만도 아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조금 더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저마다 만나는 바깥세상은 다를 것이다. 모두의 상황이 같진 않으니까. 나의 경우에는 일찍 퇴직했고, 남편이 있고 아이가 없어서 가능한 것들이 있었다. 또, 그래서 더 쉽지 않았던 것들도 분명 있다. 다만, 퇴직을 하게 될 모두에게 미리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아마도 퇴직 후에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될 당혹스러움에 대해 말이다.
처음 바깥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자주 오징어가 됐다.(불에 구울 때 오그라들고 뒤틀리는 오징어의 모습을 빗댄, 못나 보인다는 표현) 눈앞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가 없고, 매일을 버틸만한 사소한 성취감이 없어서였다. 하고자 하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의지를 활활 태우던 공모전은, 언제부턴가 내 앞에 놓인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마치, 한 번도 완벽하게 넘어 본 적 없는 뜀틀 같았다. 다시 도전하더라도 어김없이 턱! 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 것 같은, 높고 긴 뜀틀 말이다. 시간은 유수와 같았고, 흐르는 시간 앞에서 열심히 헤엄치지 않은 마음들이 낙오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순간이 왔다. 그 당혹스러운 기분을 누구나 한 번쯤은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 다듬어 씻어놓은 푸르른 시금치를 뿌리 부분부터 뜨거운 물에 밀어 넣었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탕으로 슬그머니 다리를 집어넣듯, 시금치들이 뜨거운 물에 잠겼다. 곧, 시금치들이 끓는 물속에 온몸을 뉘인 체 흐늘거리기 시작했다. 가스 불을 끄고 뜨거운 물과 시금치를 채반에 쏟아부었다. 차가운 물로 헹군 시금치를 두 손으로 힘껏 쥐어짰다. 손 안에서 동그랗게 뭉쳐진 녹색 공을 탈탈 털어내자, 싱싱함이 모두 사라진 맥없는 것들이 접시 위에 흐트러졌다. 풍성한 몸체를 자랑하던 생기 넘치던 시금치가 그새 한없이 숨이 죽었다. 딱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직 무쳐지지 않은 풀 죽은 시금치는 어디에도 쓸모가 없어 보였다. 시금치를 무치다 말고, 맥없이 앉아 있었다. 그런 마음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 왔다.
하지만, 시금치의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털어놓은 시금치를 작은 볼에 옮겨 담고, 다진 마늘 반 스푼, 소금 조금, 참기름을 뿌리고 시금치들이 너무 망가지지 않도록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낸다. 깨로 마무리한 후, 시금치 잎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넣는다. 짭조름한 소금과 알싸한 마늘 향이 고소한 참기름과 함께 입안에서 은은한 춤을 춘다. 숨 죽은 시금치가 나물로 무쳐졌다.
'하기야, 시금치가 숨이 죽지 않고서, 무슨 수로 나물이 된단 말이야.'
싱그럽고 풍성했던 시금치는 누군가의 입맛에 맞고, 그의 건강에도 좋을, 그런 나물이 되기 위해 숨을 죽여야만 했다.
여유롭게 누리던 것들을 줄이고, 내세울만한 자랑거리들을 덜어내고, 빵빵하던 자만심의 숨을 죽이고서, 누군가에게 이롭고 좋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쓸모는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쓸모가 되지 않을까? 마트에서 파는 시금치 한 단 보다, 반찬가게에서 파는 시금치나물 한 팩이 더 비싸니까.
그러니, 우리가 선택을 했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든, 바깥세상에 던져졌을 때, 문득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날이 오더라도, 너무 당혹스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또 다른 쓸모를 위해 변화하는 중인 거니까. 주어진 길 위에서 묵묵히 발걸음을 떼는 일, 추운 바깥세상에서 몸이 얼지 않도록 부지런히 걷는 일, 그렇게 걸어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또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나고, 보고, 느끼고, 깨달아가지 않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