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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Oct 07. 2020

엄마는 빈 방을 지키며 거실에서 잔다.

<봉순이 엄마 편> 2.

 소고기 장조림을 만들고, 멸치와 새우를 볶고, 돈가스를 튀겼다. 저녁을 한 상 거하게 차려놓고 밥을 담고 있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해?" 

 엄마의 둘째 사위와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고 대답하자, 엄마는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하루를 마무리하다가 느닷없이 마음이 짠했다. 생각해보니 저녁시간에 엄마가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게, 결혼 이후 반년 만에 처음이었다. 보통은 '저녁 준비를 하고 있겠거니.' 싶어서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은 엄마가 전화를 했다.

 엄마는 오늘, 저녁으로 혼자 뭘 먹었을까? 하루 종일 혼자 심심하진 않았을까? 또, 캄캄한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는 이 없는 집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긴 밤을 보낼까?

 "나는 결혼 안 해. 내가 평생 엄마 책임질 거야."라 말하고서 서른여덟의 나이에 뒤늦은 결혼을 하고 곁을 떠나버린 막내딸에게, 엄마는 정말... 섭섭한 마음이 조금도 없었을까?




 올해로 70세인 엄마의 삶을 나는 속속들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어린 시절의 엄마는, 오래전에 들었던 외할머니의 증언이 전부다.

 "얼른, 들어가~~. 수업 잘 들어."

 학교 앞까지 엄마를 바래다주고서, 할머니는 뒤돌아 교문 뒤에 숨어 있었단다. 그러고 있자면, 몇 분 후 엄마가 어김없이 교문을 쫄래쫄래 걸어 나오더라는 이야기.

 공부하기를 싫어했던 어린 봉순이가 그 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문득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는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예전에 K대학교 다니는 남자랑 결혼할 뻔했다고 하지 않았어?"

 '어라;;; 너무 생뚱맞았다.'

 갑작스러운 딸의 질문에 1~2초 간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엄마가 깔깔 웃었다.

 "넌, 갑자기 그런 걸 물어?"

 그리하여 시작된 신문 아닌 신문을 통해, 수박 겉핥기 마냥 드문드문 엄마의 삶을 알게 되었다.


 다섯 남매 중 막내딸인 줄 알았던 엄마는, 엄연히 따지면 7남매 중 막내딸이었다. 외할머니에게 '말하자면 긴 사연'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엄마에게 형제지간을 물으면, 엄마는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이복형제들을 붙였다 떼었다 했단다. 엄마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집에 머슴이 있을 만큼 부잣집이었다던 엄마는, 그 후의 시절을 이렇게 말했다.

 "뭐가 얼마나 좋았겠냐."

 딱히 좋았다 할만한 기억이 없던 시절, 어느 날 엄마는 동네 언니 손을 잡고 가출을 했다. 전남 강진에서 서울까지. 서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외할머니의 속이 타들어갈 동안, 엄마는 그곳에서 남의 집 살이를 하며 1년간 돈을 모았다. 원래 옷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어서, 천을 떼어다가 미싱으로 직접 블라우스와 치마, 원피스와 투피스까지 만들어 입곤 했다던 엄마는, 그 돈으로 종로에 있는 양재학원에 등록했다. 본격적으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즈음, 학벌 좋은 서울남자와 교제를 했다. K대가 아닌, Y 대였다. 하지만 형편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엄마는 얼마 가지 않아 연애를 그만뒀다. 양재학원을 졸업하고 양장점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뒀다. 그리고 이번에는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의 기억은 더 빠르게 건너뛰었다. 엄마는 어느 고무신 공장에서 일을 한 적도 있다는 이야기만 꺼냈다. 그러다 세월이 흘렀고, 먼 친척의 소개로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엄마는 한국땅에 삼각형 꼭짓점을 찍으며 살았다.

 '우와... 이런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여성!'


 결혼 후, 엄마는 아빠와 365일을 붙어 지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기억하는 엄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엄마는 어느 작은 동네 슈퍼집주인아줌마였고, 아빠를 따라 시골에 들어가 과수원을 시작한 게 엄마 나이 마흔 살의 일이었다. 지긋지긋할 만큼 함께였던 아빠가 떠난 건, 엄마 나이 58세였다. 휑 비어버린 아빠의 빈자리를 엄마의 첫째 딸(=내 언니)의 둘째 아이가 채웠다. 엄마는 갓난쟁이 손녀를 키우며 울고 웃었다. 손녀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막내딸의 손에 붙들려 전국 맛집과 관광지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7년을 보내던 어느 날, 엄마의 막내딸이 결혼을 했다.


 올해 친정집에 갔을 때였다. 지금도 내 엄마와 함께 사는 둘째 조카(할머니가 좋고, 오빠가 귀찮아서)가 온라인 수업(코로나 19로) 때문에 2주 넘게 제 집에 가 있던 때였다. 저녁을 먹고, 나는 예전 내 방(지금은 조카가 사용하는)에서 오랜만에 옛날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밤이 깊었다. 가만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보니, 엄마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잠든 엄마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던 건 생각지 못한 이유 때문이었다. 엄마는 방을 놔두고서 거실에서 잠을 잤다. 불 꺼진 캄캄한 집안에는 빈 방이 하나, 둘, 셋이다. 아주 오래전 아빠와 엄마가 자던 방 1개, 사춘기 언니가 자던 방 1개, 내가 자던 방 1개였다. 엄마에게 가족이었던 아빠와 언니와 나는, 각자의 이유로 모두 엄마 곁을 떠났다. 그래서 엄마는 빈 방 셋을 지키며, 혼자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여러 날들을 그렇게 혼자 잠들었을 엄마의 밤을 보는 것 같았다.  


 잠이 깬 새벽이면, 그날의 엄마 모습이 눈앞에 선해진다. 조카도 없는, 혼자 남은 엄마를 생각한다. 곤히 주무시고 계신다면 다행이지만, 혹여 잠이 오지 않아 이 컴컴한 밤을 견디고 있을까 걱정이 된다.

 엄마에게 이 얘기를 전했더니, 전화기 너머에서 봉순이 엄마가 말한다.

 "걱정 마. 네 엄마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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