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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Oct 13. 2020

여기서 내려주세요.

<이계창 씨의 막내딸 편> 4.

 아빠의 자줏빛 오토바이가 사라지고 난 후, 우리 집에는 1.5톤 흰색 트럭이 있었다. 과수원을 시작하면서 공판장으로 과수를 실어 나를 트럭이 필요했던 아빠는, 화물칸이 좁은 대신 승합칸이 두 칸인 트럭을 샀다. 우리 네 가족이 탈 수 있고, 화물도 실을 수 있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효율적이고 고마운 트럭이지만, 사춘기 중학생이었던 1992년도의 어린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불편한 존재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40~50분이 걸렸던 막내딸의 등굣길을 아빠는 종종 태워다 주려 했다. 아빠 트럭을 타면 학교까지 20분이 걸리지 않았으니,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지고 몸이 편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비가 오거나 추운 겨울에는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하지만, 아빠의 트럭이 학교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교문 앞까지 가려는 아빠와, 교문에서 100미터 떨어진 골목에서 내리려는 막내딸이 실랑이를 벌였다.

 "아빠, 여기서 내려줘."

 "비 오는데, 교문 앞에서 내려줄게."

 "아니 아니, 그냥 여기서 내려줘."

 처음 몇 번은 자꾸 되묻던 아빠가, 언제부턴가 말없이 내가 원하는 곳에서 트럭을 멈춰 세웠다.



나의 아버지


 지금 생각하면, 당신께 너무나 죄송하고 배은망덕한 순간이 있습니다. 1991년도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단짝 친구 S의 아버지는 사립대학교 음대 교수였습니다. 여름방학, S의 아버지가 직접 작사·작곡했다는 노래로 S와 나는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대회 준비를 위해 S의 집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S와 나는 피아노 옆에 나란히 섰고, S의 아버지가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내 눈에 피아노 치는 S의 아버지가 정말 멋있어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처음으로 당신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친구 아버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가난으로 거칠어지고 마디가 굵어진 당신의 투박한 손이 부끄러웠습니다. 1992년도 중학교 교문 앞에서, 승용차가 아닌 당신의 트럭을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나는 부끄러워했습니다. 감히,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하고 큰 줄도 모르고 당신을 부끄러워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빠 가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라."

 딸의 대학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사과를 따고 고구마를 캐느라 욱신거렸을 등을 두드려달라던 당신의 부탁을, 팔이 아프다고 엄살 부리며 거절하는 막내딸에게 당신은 장난처럼 말했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가버리고 없는 지금, 대수롭지 않게 듣던 그 말이 가슴에 깊이 파고듭니다.

 나는 후회합니다. 당신에게 잘하지 못했던 것들만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니 그런 철없는 시절이 있었다고, 멋쩍게 웃으며 "아빠, 내가 미안했어!" 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들을 수 없는 당신이라, 이렇게 미어지는 마음을 하얀 공백 위에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부디 철없던 막내딸의 못난 마음을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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