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막내작가 Oct 15. 2020

알록달록 사탕 때문에

<사춘기 조카 편> 3.

 서른 살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 조카를 '쌍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쌍둥이의 탄생」 편을 참고해주세요.



 벚꽃놀이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다섯 살 쌍둥이와 여덟 살 첫째 조카, 그리고 내 엄마(조카들의 외할머니=봉순이 엄마)와 함께 하늘이 어둑해질 때까지 벚꽃을 구경하다가 저녁이 되었다.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리는 조금 늦더라도 집 근처에 가서 먹기로 했다. 집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야 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누군가 목이 마르다고 말했다. 물을 사기 위해, 길가에 보이는 마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살 것은 생수뿐이었고, 갈 길도 멀었기에, 나는 혼자 얼른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째 조카가 마트에 따라 들어가겠다고 나섰다. 쌍둥이도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냥 차에서 기다리자는 봉순이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녀석은 내 양손을 하나씩 붙잡고 마트로 들어갔다. 식료품과 기본적인 생활용품을 파는 조그마한 시골 가게였다. 마트 안에 들어서자, 우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먹고 싶은 거 하나씩 얼른 골라와."

 신이 난 첫째 조카가 과자 진열대를 향해 먼저 달려갔다. 달려가는 제 오빠를 바라보며 다섯 살 쌍둥이도 덩달아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뛰어갔다. 나는 음료수 진열대에서 생수 두 병을 집어 들고 조카들이 있는 과자 진열대 쪽으로 다가갔다. 첫째 조카는 벌써 과자 하나를 골라 들었다. 초콜릿이 듬뿍 묻은 쿠키였다. 역시!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과자 맛도 먹어본 놈이 잘 안다. 적어도 세 살 즈음부터 새우깡을 입에 문 여덟 살 첫째 조카가, 그간 5년 동안 먹어본 과자의 종류도 제법 되었을 터였다.

 반면, 다섯 살 쌍둥이는 제 키보다 서너 배는 높은 과자 진열대 앞에서 요리조리 고개만 돌리느라 바빴다. 아마도 난생처음 보는 형형색색 과자들 앞에서 흥분과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다섯 살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떤 맛일까 종잡을 수 없는 과자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으니까.

 "쌍둥이~ 아직 안 골랐어?"

 한참 동안 진열대를 두리번거리던 쌍둥이가 제 앞에 놓여 있던 커다란 사탕 봉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사탕 봉지를 들고 내게로 달려오는 아이의 표정을 열 글자로 표현하자면, 세, 상, 에, 이, 렇, 게, 기, 쁠, 수, 가! 쌍둥이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사탕 봉지를 내게 보였다.

 웁스;;; 사탕 봉지 안에는 알록달록 온갖 인공색소로 뒤덮인 사탕 100개가 들어 있었다.

 "쌍둥이, 이건 몸에 안 좋은 게 많이 들어가서 안 돼. 다른 거 골라봐."

 당황한 쌍둥이가 사탕 봉지를 들고 다시 과자 진열대 앞으로 뛰어갔다. 첫째 조카는 이미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그 틈에 나는 휴대용 티슈를 찾아왔다. 쌍둥이는 과자 진열대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아까보다 더 빠르게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작은 눈이 진열대 여기저기에 가 닿았다가, 다시 다른 곳을 향했다. 아무래도 뭘 골라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딱히 고를만한 과자가 없는 듯 보였다. 쌍둥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시간 없어, 쌍둥이. 고를 거 없으면, 그냥 가자!"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으앙!!!!!

 울음을 터트리는 쌍둥이의 손을 잡아끌고 계산대를 지나 마트를 나왔다. 차에 올라타서도 쌍둥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되려 더 서럽게 울었다. 봉순이 엄마가 쌍둥이를 달래주느라 진땀을 뺐다.

 날, 쌍둥이를 울리고서, 나는 목적지에 얼마나 일찍 도착했을까? 5분? 10분? 그래서 무엇이 얼마나 이로웠을까?


 이후로 그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다섯 살 쌍둥이의 모습은, 내 손에 끌려 마트를 나오면서 서럽게 울던 모습이 아니다. 다른 과자를 골라오라는 내 말에, 진열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초조해하던 모습이다. 사탕 봉지를 내게 내밀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던 얼굴이다. 이렇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줄 알았다면, 그날 그 순간에 조금 더 기다려줄 걸 그랬다. 아이가 원하는 과자를 고를 때까지, 옆에서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줄 걸 그랬다. 아니면 차라리 처음 내게 내밀었던 그 알록달록한 사탕을 그냥 받아줄 걸 그랬다. 그게 뭐라고, 알록달록 사탕 때문에 나는 그날 그토록 행복해하던 어린 조카의 마음을 처참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5~6년이 흘러, 그날 일에 대해 쌍둥이에게 사과한 적이 있다.

 "쌍둥이, 그때 내가 정말 미안했어."

 기억도 나지 않을 일에 대해 쌍둥이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괜찮지가 않다. 다섯 살 쌍둥이에게는 미처 사과하지 못했던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마도 미안한 마음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알록달록 사탕 때문에. 그게 뭐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서 내려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