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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Oct 28. 2020

엄마가 셀카를 찍는다.

<봉순이 엄마 편> 3.

 셀피(Selfie) : 촬영자가 자기 자신을 촬영하는 것. =셀카(셀프 카메라)


 엄마와 종종 다니는 목욕탕이 있다. 20년도 더 되었으니, 꽤 오랫동안 다닌 셈이다. 처음에는 시골 읍내에 위치한 평범한 목욕탕이었는데, 물이 좋다는 소문이 났다. 어느 날 새롭게 단장을 시작하더니, 지금은 실내·외 워터파크 시설까지 갖춘 큰 규모의 온천이 되었다. 온천수의 게르마늄 함량이 세계에서 2위라는 홍보가 효과를 본 건지,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버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이런저런 풍문들도 퍼졌다. 어떤 아주머니는 얼굴의 검버섯이 사라졌다 하고, 어떤 아주머니는 빠진 머리가 다시 빽빽하게 자랐다 했다. 소문대로라면 만병통치가 따로 없는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앉아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목욕탕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다녔던 나름 원년멤버로서, 사람들의 허풍들을 듣고 있자면 웃음이 배시시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년 전이었다. 게르마늄의 효능을 홍보하는 광고판으로 둘러싸인 온천탕에 앉아 있는데, 문득 건너편 안내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심장병 환자, 음주자, 65세 이상 노약자는 보호자가 동반하여....

 여느 목욕탕에나 있는 안내표지 그날따라 눈에 거슬렸던 건, 65 이상 노약자' 문구 때문이었다. 내 엄마의 나이가 만 65세가 되던 해였다.

 대한민국에서 65세라 함은, 국가로부터 늙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이런저런 우대를 받을 수 있는 나이다. 늙음을 공경(=경로) 받음과 동시에, 65년을 넘게 사느라 쇠약해져 버린 신체 때문에 보호자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경로자의 또 다른 이름이 노약자인 까닭이다.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 온탕에 앉아 안내표지판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엄마가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몸을 담갔을 이 온천탕에, 이제 엄마 홀로 들어올 수 없다고. 고작 허리도 차지 않는 물높이의 온천탕에 들어갈 때에도 보호자를 동반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안내문이 내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누군가 굳이 얘기해주지 않아도, 65세를 지나면서 엄마의 몸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없던 차멀미가 생기고,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일이 생기고, 노안으로 심해진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우리 엄마가 정말로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는 내 보호자였다. 엄마가 해준 음식 맛은 따라 할 수 없고, 내 아픈 곳을 제일 먼저 살펴주고, 한결같은 잔소리와 걱정을 해주는 엄마. 무슨 일이 생길 때, 엄마! 하고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다.

 엄마에게 '나이 듦'이 달라붙는 게 싫어서 온갖 참견을 했다. 머리 펌을 왜 그렇게 짧게 하는지, 옷이 너무 컬러풀하지 않은지, 걸음은 왜 팔자로 걷는지 잔소리를 했다. 카카오톡 사용법과 사진을 전송하는 법, 듣고 싶은 음악을 찾는 법, 스마트폰을 조금 더 스마트하게 사용해보자며 '나는 봐도 잘 모르겠다~'는 엄마를 앉혀두고 반복해서 설명을 했다. 엄마가 65세가 되던 해부터 나는 엄마가 더 빨리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 싫었다.


 엄마의 셀카를 처음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였다. 엄마 휴대전화 카메라 앨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꽃, 다육이 화분,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요리 레시피를 찍은 사진들 사이에... 엄마의 셀카 사진이 있었다. 햇살 아래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웃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누가 보아도 엄마가 엄마를 찍은 사진이었다. 놀라울 것 하나 없는 일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우리 엄마가 셀카를?'

 이걸 엄마가 직접 찍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그저 놀라웠다. 셀카는 젊은 사람들만 찍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조카가 3~4살일 때, 내 휴대전화를 가지고 혼자서 이런저런 요상한 표정들을 지으며 셀카를 찍어두던 게 떠올랐다. 말을 다 트지 않은 어린아이도 찍는 셀카를 왜 나이가 든 사람들은, 특히 우리 엄마는 찍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화면 속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어쩐지 더 예뻐 보였다. 사진 속 엄마는 엄마를 바라보고,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지금도 아주 가끔씩 셀카를 찍는다. 엄마가 엄마의 삶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마주하는 것 같아, 나는 그것이 좋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엄마의 셀카는, 엄마가 10년은 더 젊어졌다고 말해주는 반증처럼 느껴진다. 다음에는 엄마에게 얼짱각도 셀카 찍는 법을 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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