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막내작가 Oct 29. 2020

언니, 나랑 맥주 한 잔 할래?

<버터후라이아짐 편> 2.

 "언니, 나랑 맥주 한 잔 할래?"

 언니는 이 말을 싫어한다.

 언니도 나도 미혼이던 시절의 일이었다. 무더운 여름, 모처럼 시원한 맥주가 생각이 나서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녁에 맥주 한 잔 하자는 동생의 말에 언니는 들뜬 마음으로 일찍 집에 들어왔단다. 치킨을 주문하고 맥주를 사 왔단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동생이 웬일인가 싶어, 언니는 날을 잡았단다. 그런데 술자리가 시작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치킨을 열심히 뜯던 동생은 정말로 맥주 한 잔, 딱! 한 잔을 마시더니 얼굴이 벌게져서 더는 못 마시겠다며 자리를 일어섰단다.

 "아~~~ 나, 취한다. 언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단다.

 언니의 '한' 잔과 나의 '한' 잔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그날의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언니는 이제 '술 한 잔 하자.'는 내 말에 속지 않는다.


 언니와 나는 부모님에게서 각자 다른 것을 닮아 태어났다. 언니는 아빠의 알코올 분해 능력을 타고나서 웬만한 주량에 끄떡없었다. 나는 엄마를 꼭 닮아,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벌겋게 올라온다. 다른 것이 어디 주량뿐일까. 성격, 취향, 습관이나 생활패턴도 달랐다. 자매지간에도 다른 게 참 많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언니를 아무런 견해 없이 받아들였다. 가끔은 나와 다른 점 때문에 언니가 멋있어 보였다. 성격이 소심한 나와 달리, 언니는 어느 자리에서든 활달했다. 그래서 나는 늘 언니 뒤에 숨었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 부모님의 친구들을 만난 자리,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는 언니 뒤만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언니의 취향 덕분에 좋아하게 된 것들도 많았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노란색 솜이불이 새로 깔린 언니 방에서 라디오를 처음 들었다.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더 유명해진 「캐논의 변주곡」은, 영화가 나오기 4~5년 전에 언니가 내게 건네준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앨범 「December」 CD의 9번 트랙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내 머리가 커졌다. 언니가 만만해 보였다. 옳다고 믿는 것과 고집들이 생기면서, 나는 언니의 다름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처음엔 술 한 잔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다름'이, 어느새 뽑아주고 싶은 잡초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선을 넘었다. 잡초를 뽑아주겠다며 호미를 들고 언니의 마음밭에 들어가, 온갖 것들을 모조리 뒤집어놓곤 했다. 점점 나누기 불편한,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침묵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철이 들고 보니, 내가 옳다고 생각해오던 것들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었음을 알았다. 일평생이라 하더라도 한낱 한 사람이 쌓아온 가치관이란 게, 참 별게 아니구나 깨닫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언니와 나의 다름에 대해 자주 돌아본다. 나와 달라서 이상하다 말하던 것들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타고난 것과 살아온 것들이 합하여져 더 커져버린 다름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어쩐지 언니와 술 한 잔 나누며 이야기하다 보면,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언니에게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다.

 "언니, 오랜만에 나랑 맥주 한 잔 할래?"

 나는 또 맥주 한 잔에 얼큰하게 취할 테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안주를 축내며, 언니가 마시는 술잔을 채워줄 수는 있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셀카를 찍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