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창 씨의 막내딸 편> 5.
아빠가 돌아가시던 해, 나는 아빠의 흔적을 열심히 찾았다. 필체가 고스란히 남은 종이, 한겨울 애용품이던 귀덮개가 있는 털모자, 손때 묻은 공구들, 아빠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끌어모았다. 하지만 가장 찾고 싶었던 것은 아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백업을 해둔 외장하드를 모조리 뒤졌다. 5년 간의 사진들을 다 찾아보았지만 아빠의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은 없었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 남자 친구와 찍은 사진, 조카 사진뿐이었다. 그나마 몇 해 전 조카와 함께 찍은 아빠의 사진 몇 장이 발견되었다.
당신의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다는 사실에 못 견디게 마음 아팠습니다. 왠지 미안하고 속상했습니다. 애꿎은 사진첩만 뒤적였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두꺼운 사진첩 3권에는 내 어린 시절 사진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을 언니와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중학생이 되기까지 한 편의 이야기가 사진첩 속에 담겼습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이전이었기에, 당신은 필름 카메라의 작은 창에 눈을 가져다 대고서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신의 그 까만 필름 카메라를 나는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발견했습니다. 카메라 안에 필름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을 땐, 심장이 얼마나 두 방망이질했는지 모릅니다. 혹시나 당신의 모습이 들어있진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관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필름에는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카메라 안에 오랜 시간 끼워져 있던 탓에, 이미 빛에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한동안 당신의 손주가 당신을 찾았습니다. 유독 당신을 좋아하던 아이였지요. 말도 다 트지 못한 녀석이 "이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를 외쳤습니다. 당신의 성을 붙여 만든 호칭이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무슨 일로 보이지 않느냐, 당신을 찾는 말이었습니다. 조그만 녀석이 내게 다가와 사뭇 심각한 표정의 얼굴을 들이밀며 "이 할아버지!" 하고 물을 때면, 목이 메었습니다.
시간이 몇 년 흐른 뒤, 초등학생이 된 아이와 당신을 찾아갔습니다. 납골당, 당신의 사진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3살 손주를 번쩍 안고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이 할아버지 기억나?"
아이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널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여기 안겨있는 꼬맹이가 너야."
우리 집 거실에는 당신의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습니다. 봄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을 한 당신이 손주 녀석의 손을 잡고 서 있습니다. 허리춤에도 닿지 않는 작은 아이를 내려다보느라, 당신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언뜻 보이는 당신의 얼굴은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사진에는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그 날, 그 시간, 당신의 영혼 아주 작은 한 조각이라도, 순간의 빛에 사로잡혀 필름에 고스란히 박혀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그날의 당신이 느꼈을 행복을 느낍니다. 몇 장 남겨지지 않은 당신의 사진들을 간직합니다. 더 많은 사진이 없는 것을 속상해합니다. 당신의 목소리와 모습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동영상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나는 당신의 과수원에 가 서 있습니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소나무 숲에서 새들의 부산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기지개를 켜며, 개나리들이 즐비해 있는 비탈길 위에 쪼그려 앉습니다. 그 길 끝에서 당신이 나를 향해 걸어오며, 말을 건넵니다.
"막내~ 일어났는가?"
봄볕에 그을린 당신의 까만 얼굴이 날 보고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