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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Nov 21. 2020

속눈썹은 붙이지 말아 주세요.

<이계창 씨의 막내딸 편> 6.

 "속눈썹 붙이실 건데, 절대 울면 안 돼요. 울면 속눈썹이 다 떨어져요."

 "네? 잠시만요...... 그럼, 속눈썹은 안 붙일게요."

 "그래도 붙이시는 게 좋을 텐데...... 나중에 사진 보면 후회해요."

 "...... 그냥, 속눈썹은 붙이지 말아 주세요."


 3년 전 결혼식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풀메이크업이란 걸 했다. 화장에는 젬병인 내 손으로 평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전문가의 손을 빌려 제대로 된 화장을 하는 게 신기했다. 피부톤을 정돈하고, 눈썹을 그리고, 아이쉐도우를 바르고, 아이라인을 그렸다. 그런 후, 눈 화장의 화룡점정인 속눈썹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혹시나 눈물을 흘리면, 접착제로 붙인 인조 속눈썹이 바로 떨어져 버린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고민했다. '울지 않아야지.' 다짐이야 마음속으로 이미 수백 번도 더 했지만, 정말 눈물을 참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결국 신부 메이크업은 화룡점정을 찍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옆에서 혼주 메이크업을 받고 있던 엄마도 덩달아 속눈썹을 뗐다. 평소 노안으로 눈이 시려서 눈물이 자주 나는데, 눈 화장까지 해놓으니 눈물이 계속 난다는 게 핑계였다. 그리하여 그 날, 엄마와 나는 인조 속눈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짜리 몽땅한 본래의 속눈썹을 깜빡이며 결혼식장에 들어섰다.


 내 결혼식이 걱정된 건, 아빠의 부재 때문이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대안을 찾아야 했다. 큰아버지가 계셨지만, 아빠와 오랜 세월 사이가 좋지 않았던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가기는 싫었다. 그러면 형부 손을 잡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신부는 왜 혼자서 씩씩하게 식장에 들어가지 않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식장에 혼자 걸어 들어갈 결심을 하던 차, 이모라면 죽고 못 사는(그때는 그랬다.^^;;) 조카 두 명이 화동(花童)을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화동을 하기에 조카들이 너무 커버렸다는 사실을, 예행연습을 하는 날 깨달았다. 당시 조카들이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이었는데, 첫째 조카는 키가 내 어깨까지 자라 있었다. 그리하여 갈 피를 잡지 못하던 신부 입장이 첫째 조카의 손을 잡고 들어가자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렀다.

 "신부 입장!"

 신부 손을 잡은 열두 살 조카의 등장으로 사람들에게 뜻밖의 웃음을 주었으니, 그러길 잘한 것 같다.

 사실 나보다 더 걱정이 되었던 건, 결혼식 내내 혼자 앉아 있을 엄마였다. 아빠의 빈자리에 무거워질 엄마의 마음이 못내 걸렸다. 고민 끝에, 애당초 눈에 띄는 빈자리를 없애기로 했다. 예식장 측에 미리 부탁을 해서 신부 혼주 자리에는 의자를 하나만 놓았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결혼식은 눈물만 찔끔하고서 무사히 잘 끝났다. 엄마는 혼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인사하고, 혼주석을 지켰다. 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을 찍고 손님들을 배웅할 때까지 엄마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나는 긴장이 되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해서, 또, 울지 않으려고 결혼식 내내 일부러 웃었다.

 그랬다. 결론은 엄마와 나는 인조 속눈썹을 붙여도 좋았을 뻔했다. 메이크업을 해주시던 분의 말처럼, 결혼식 사진을 보니 후회가 된다. 가끔 사진을 볼 때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을(사진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신부와 신부 어머니의 눈을 뚫어져라 본다. '속눈썹을 붙였더라면 눈이 훨씬 크고 깊게 보였을 텐데...... ' 하면서.


 붙이지 못한 속눈썹이 아쉬워서, 기회가 되면 풀메이크업을 다시 받아봐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생기면, 어쩐지 자꾸 다른 마음이 들었다. 친구의 결혼식에 갈 때면, 신부가 돋보여야 할 자리에 굳이 하객인 내가 풀메이크업을 하고 가야 할까? 생각했다. 남편의 학위 수여식이 있던 날에도 풀메이크업을 하고 가라는 지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냥 그런 것들이 번거로워서 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외선 차단제조차 귀찮아 바르지 않다가, 마흔이 넘어 얼굴에 주근깨가 화장으로 감춰지지 않을 즈음에서야 바르기 시작한 사람. 진한 화장을 한 내 모습이 왠지 나 같지 않아서 싫은 사람. 그냥 적당히 단정하고 적당히 흐트러진 자연스러움이 좋은 귀차니스트(귀찮-ist)였나 보다. 그러면서 결혼식 날에는 괜히 아빠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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