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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Jan 17. 2021

세 번의 경고

<이계창 씨의 막내딸 편> 7.

 어린 시절 언니와 나는 딱히 큰 말썽을 피운 적 없이 대체로 얌전하게 컸다(고 생각한다)무언가를 잘못해서 아빠에게 매를 맞아본 기억은 크게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비록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한 적은 수 없지만. 아빠는 매를 들기 전에 늘 세 번의 경고를 했다. 같은 이유로 잘못했을 때, 세 번까지는 경고에 그친다. 그러고도 네 번째 잘못이 발각될 때는 군말 없이 매를 맞기로 한 것. 그것은 두 딸을 기르는 아빠의 규칙이었고, 두 딸과 아빠 사이의 약속이었다.

 "아빠가 지금까지 세 번 경고했어. 다음번엔 용서 없어."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한 방을 썼던 언니와 나는 자주 투닥거렸다. 나는 언니에게 대든다는 이유로, 언니는 동생을 보듬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아빠에게 경고를 받았다. 경고는 늘 세 번까지만! 세 번의 횟수가 찰 동안은 안심해도 좋다.

 "이번이 두 번째야."

 '몇 번의 경고를 받았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일이 터진다. 세 번의 경고가 끝나면, 아빠는 매를 들었다. 처음부터 약속된 것이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빠가 세 번 경고했었지? 이번이 네 번째지? 둘 다 서!"


 그날도 우리 자매는 책상을 붙잡고 섰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언니가 부모다.」고 평소 가족 내에서 언니가 동생보다 우위에 있음을 자주 각인시켰던 아빠는, 매도 언니부터 때렸다. 아빠 손에는 빗자루가 거꾸로 들려 있고, 언니는 책상을 붙잡고 섰다.

 "5대다. 움직이면 다쳐."

 그 뒤로는 언니가 어떻게 매를 맞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다가올 내 차례가 두려워서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있었으니까. 어느새 언니가 매를 다 맞았는지, 나를 부르는 아빠의 호령이 떨어졌다.

 "자! 막내! 이리 서!"

 그 순간 나의 두려움은 폭발했다. 나는 아빠의 다리 한쪽을 붙잡고 늘어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으앙!!!!! 아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어허! 일어나! 약속은 약속이야."

 "아빠!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아빠가 이미 세 번 경고했잖아."

 "으앙~~ 아빠 잘못했어요!!"

 그렇게 아빠 다리를 붙잡고 5분 즈음 버텼을까? 결국 아빠는 나를 때리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언니는 아빠 다리에 매달려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세 살 아래 동생이 정말 얄미웠단다. 눈물을 꾹 참고 매를 다 맞은 자신이 억울했다고 했다.

 아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버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통하지는 않았다. 통하지 않을 때면, 얄짤없이 나도 매를 맞았다. 언니와의 싸움은 매를 맞는 가장 큰 이유였고, 그 밖에도 몇 가지 이유들이 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고는 결실을 맺기 전에 사라지는 가벼운 것들이었고, 어떤 경고는 세 번까지 횟수를 다 채우고서도 시간이 한참 흘러버린 까닭에 다시 리셋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서 언제부턴가 아빠의 경고는 끝을 다 채우지 않고 흐지부지 사라지는 일이 잦아졌다. 매를 들어 가르치기엔 언니와 내가 너무 커버린 탓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후로 오랫동안 아빠의 경고를 받았으니, 그 이유는 바로 통닭이었다. 평소 아빠는 통닭을 튀길 때 사용되는 기름이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아마도 아빠의 갑장(동갑내기) 친구가 오래전 통닭집을 차렸을 때, 며칠씩 재사용되어 색깔이 거무스름하게 변한 기름을 직접 목격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기름을 본 적은 없고 통닭을 맛본 적은 있으니, 아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통닭을 자주 시켜먹었다. 그리고 자주 들켰다.

 "막내야~ 통닭 해롭다고 아빠가 말했지? 한 번만 더 통닭 시켜먹다가 아빠한테 들키면 000000 00000."

 하루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아빠가 험한 협박을 했다. 내 다리가 몽둥이라면, 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다는. 이제 통닭을 시켜먹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의 통닭 사랑은 어쩔 수가 없다. 타고난 취향이었으니, 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미혼이던 시절, "내가 평생 통닭 사 줄게!"라고 프러포즈를 받고 싶단 생각도 했었다. 몇 년 전, 한승태 작가가 직접 체험해서 쓴 「고기로 태어나서」 책을 읽은 후, 양계장에서 대량 사육되는 닭들의 실태를 읽고 한동안 달걀도 사 먹지 못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말 쉽게 끊어지지 않는 치킨이다.


 다행히 평생 통닭을 사 줄 배우자를 만났지만, 통닭 못지않게 먹어버린 내 나이 탓에 이제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저녁에 통닭을 먹고 자면, 어김없이 한밤중에 배가 아파서 잠을 깬다. 그런 날이면 아침이 올 때까지 위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도 깨어 있는 것. 그럴 때마다 통닭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작심 삼세번이다. 네 번째에는 누군가 나를 눈물이 쏙 나도록 혼을 내주어서, 반복되는 실수와 잘못들을 싹둑싹둑 끊어준다면 좋을 텐데.

 나이를 먹으니, 이제는 잘못을 했다고 내게 매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그것이 참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씁쓸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째서 나이를 먹을수록 맞을 짓을 더 저지르는 것 같다. 통닭만이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채로 살다 보니 이유도 훨씬 다양해졌다. 폭력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지만, 가끔은 어린 시절 매를 맞은 후, 왠지 모르게 속 시원해지던 기분이 그립다.

 "아빠!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울부짖고 나면,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용서받았구나,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뭔가 내가 크게 잘못을 하긴 했구나. 여러 가지 마음들이 뒤섞이면서 속이 후련해졌다.

 더 이상 세 번의 경고도, 지난 잘못을 끊어주는 사랑의 매도 없으니, 나의 과오들은 계속해서 쌓이고 굳어지고 몸집이 커지는 게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오늘 새벽에도 나는 잠에서 깼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 진리의 문장을 떠오르게 한다.

 사실, 어제저녁 내가  건 통닭이 아닌 탕수육이었다. 하지만 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긴 것은 닭이나 돼지나 매한가지, 여지없이 나는 체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어둠 속을 서성이며 아침이 오기까지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문득 아빠의 잔소리가 그리워졌다.

 "막내야~ 통닭 먹지 마. 그거 얼마나 몸에 해로운데...."

 진작, 아빠 말 좀 들을 걸......

 그래도 덕분에 오늘은 뭘 해 먹을까? 밥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런 날은 누룽지밖에 먹을 수 있는 게 없으니 말이다. 날씨도 춥고 세상도 여전히 뒤숭숭한 오늘, 나처럼 속앓이를 하는 이가 없기를. 모두들 속 편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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