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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Feb 04. 2021

모든 순간이 진심이어라.

<사춘기 조카 편> 4.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의 사진이다.

 언니가 택배로 김치를 보냈다고 했다. 며칠 후 택배가 도착했고, 상자를 열어본 나는 뜨억! 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다 무엇이냐고 묻는 내게 언니가 답했다.

 "미안하다. 말릴 수가 없었다."

 듣자 하니... 두 조카 녀석들이 이모에게 택배를 보낼 거란 얘기를 듣고, 전날부터 신이 나서 각자 이모에게 보낼 것들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동봉되어 온 것들이 가관이었다.

 그래도 첫째 조카는 나름대로 신중한 선택을 한 것 같았다. 편지를 쓴 쪽지 한 장,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 하나, 심플한 것이 딱 내 스타일이다. 반면 둘째 조카는 온갖 잡것들을 다 보냈다. 처음에는 버릴 것들을 넣은 줄 알았다. 때 묻은 토끼 인형, 줄 빠진 손목시계, 가지고 놀던 플라스틱 장난감...... 하아;;;;;

 어처구니가 없는데, 웃음이 픽! 났다. 당시 내가 즐겨먹던 오레오 씬즈 과자와 이모부가 좋아하던 약과가 들어 있었다. 좋아하는 과자라고 언젠가 흘려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할머니 호주머니에서 나올법한 사탕들은 덤이었다. 대단한 상품 개봉 후기를 남기듯, 나는 조카들이 보내온 것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잡동사니를 한가득 받아놓고도 행복했던 이유를 그때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받은 것들은 조카들이 당시 꽤 좋아하던 물건들이었다. 비록 서른 살이 더 많은 이모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게 내주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그것들을 고이 모셔두었다.


 어린 시절의 조카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 녀석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나 궁금할 때가 많았다. 밤톨처럼 동글동글한 작은 머리를 내게 기대고 누워서 귀신 이야기를 자주 청취하곤 했는데, 당시 나는 매일 밤 온갖 귀신들을 만들어내느라 고생을 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은 모두 귀신으로 둔갑을 했으니, 커튼 귀신, 접시 귀신, 코딱지 귀신, 별의별 귀신들을 창조했더란다. 사는 곳도 제각각이었으니, 달에 사는 놈, 전등 뒤에 숨어 사는 놈, 냉장고 안에 사는 놈, 가지각색의 귀신들이 하룻밤에 창조되었다가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조카가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이제는 귀신 이야기를 믿지 않을, 더구나 이모가 들려주는 터무늬 없는 얘기들은 모두 거짓부렁이라는 걸 알고도 남을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이모, 그 접시 귀신! 걔는 어떨 때 나타난다고 했지?"

 으응? 뭐라고? 접시 귀신이라고? 어디 보자, 그놈이 어떻게 탄생했더라? 기억을 되짚어봐도 당최 알 수가 없다. 그런 녀석을 내가 만들었다고? 언제? 내가 그 녀석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했어? 

 하아;;; 그 걸 꼭 기억해내야 하는 건가? 그때 동화책을 만들어놨어야 했나? 「전래 귀신」 뭐 이런 거?


 올해로 중3이 된 첫째 조카와 초등학생 6학년인 둘째 조카는 이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더 이상 귀신 이야기를 묻진 않았지만, 얼마 전 첫째 조카가 또 한 번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언니와 조카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앞부분은 내가 딴짓을 하느라 잘 듣지 못했다;;; 핵심이 뭔고 하니,

 "세상에 모든 엄마들은 자기 아들이 머리(카락)를 자르고 오면, 그냥 무조건 예쁘다고 해. 근데 이모는 안 그래. 이모는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얘기해."

 '음...... 나 칭찬하는 거 맞지?'

 내가 그랬던가? 미용실에 다녀온 조카를 보고 몇 번인가 "너, 머리 웃겨."라고 말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조카에게 인정머리 없이 사실을 그대로 말한 이모를 도리어 칭찬해주다니... 역시 아이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눈에는 자기 아들이 해도 정말로 다 예뻐 보인다는 사실을, 사춘기 조카가 이해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내가 들려준 귀신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기억하던 아이가, 이제는 조금 더 자라서 나의 사소한 행동을 기억하고 나에 대한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문득,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들을 생각했다. 어른인 척하느라 거짓을 말한 적도 있지 않던가, 귀찮아서 대충 둘러대던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흘려듣고 흘려 말한 것들 중에서, 무엇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걱정이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이야기로 세상을 이해하고, 내가 내뱉어놓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앞으로 이 녀석들을 대할 때, 모든 순간에 진심이어야겠구나.'


 어디, 조카와 이모만의 이야기일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모든 순간에 진심이어야겠구나.

 30년 더 살아본 내가 조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준다고만 생각했는데, 저 조그만 녀석들이 자꾸 나를 깨우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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