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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Feb 02. 2021

사람과 사람 사이

: 말하지 못한 너와 나의 마음, 우리들의 관계

 * 나와 26년 지기 친구인 그녀를 "토토 엄마"라 부르겠다. 토토는 그녀가 키우는 열 살 시추 강아지다.


 토토 엄마에게는 나 못지않게 오래된 친구 K가 있다. K는 토토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친구였는데, 종종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뭔가 운이 잘 따라주지 않는 사람 같았다. 가장 마지막에 전해 들은 이야기는 K가 오랫동안 도전하던 일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몇 년 간 외국에 나갔다 올 거란 소식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계획이 틀어졌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식을 끝으로, 토토 엄마는 K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 K에게 이메일도 보내봤지만 답장이 없었단다. 다시 외국에 가게 된 건가 짐작해보아도, 그렇다고 연락이 안 될 이유는 없었다. 토토 엄마는 뭔가 이상했단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고, 다음은 화가 났단다. 답답한 마음에 K의 집으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토토 엄마가 알고 있는 건 K가 살고 있는 동네뿐이었다. 정확한 집의 위치를 알고 있다 한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 집에 불쑥 찾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연락이 오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K를 기다리는 동안, 어느새 2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한동안 토토 엄마는 K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녀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로부터 다시 며칠이 지나, 밤중에 토토 엄마로부터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얼큰하게 차려진 술상이었다. 웬일로 혼술을 하고 계시느냐 묻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K의 소식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토토 엄마는 고민 끝에 K의 동생이 일한다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K의 동생과 통화를 하게 되었고, K가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토 엄마는 조금 황당했지만, 그래도 K의 소식을 듣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K의 동생이 퇴근 후 집에 가서 K에게 얘기를 전해주겠노라 말했다. 동생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K가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까, 토토 엄마는 기다렸다. 하지만 저녁이 되고 밤이 늦도록 K에게는 아무 연락이 없었던 것이다. 토토 엄마는 이제 K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나 역시도 충격이었다. 생각지 못한 허망한 결말이었다. 지난 2년 동안 K를 걱정하며 찾았던 토토 엄마가 술상을 차리지 않고 견딜 재간은 없어 보였다. 술로도 달래지지 않을 마음을 그녀는 이렇게 내뱉었다.

 "아무 일 없이 잘 살아있다니까, 그걸로 됐다."


 그녀와 대화를 마치고 잠을 청하는데, 내 잠은 이미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 찼다. 궁금했다. 당장 K붙잡아 앉혀놓고 묻고 싶었다. 30년 가까운 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뚝 끊은 이유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K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럴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상상해보았다. 사는 게 힘들고 귀찮아서 잠수를 탔거나, 아니면 토토 엄마에게 어떤 상처를 받아서일 수도 있다. 혹은, 비록 오랜 친구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연락을 끊은 것은 K의 선택이고 자유이니까.

 

 살다 보니, 오랜 시간 이어지는 인연보다 어느 순간 끊겨버린 인연들이 더 많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초등학교 친구부터, 오랜만에 우연히 만나 연락처를 받아놓고도 반갑고 그리운 마음이 어색한 세월의 벽을 넘지 못한 친구들. 같은 직장에 다니거나 같은 관심사로 인연이 닿았다가, 상황이 다시 바뀌면서 멀어진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은 어쩌다 보니 끊긴 인연들이지만, 아주 가끔은 내 의지로 인연을 끊어낸 경우도 있었다. 이제 막 활짝 핀 여린 장미꽃 같던 20대 초반에,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한 명은 나와 죽이 잘 맞았고, 한 명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끼던 친구였다. 그렇게 셋이 붙어다니기를 3년이 지날 무렵, 어떤 이유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았다. 서로 가까웠던 만큼 서로에 대한 배신감도 컸다. 결국 아물지 못한 상처처럼 우리들의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다. 죽고 못살던 두 명의 친구와 그렇게 인연을 끝냈다.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다. 철이 없었다고 아직 어렸기 때문이라고 말하자니 무책임한 변명일 뿐이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종종 생각한다. 만약 그 친구들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더라면 어땠을까? 다른 이들과는 결코 나눌 수 없는 그 시절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혼자 떠올릴 때면 나는 두 친구가 그립다. 상처를 잘 싸매고 보듬어서 소중하게 이어갈 수도 있었을 인연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가 명쾌해지기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해진다. 상대의 진심에 더 예민해지고, 배려라는 것을 더 바라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만나고 돌아서면 마음이 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에는 인연을 끊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와의 인연을 그 자리에 가만히 놓아둔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지켜본다. 그런가 하면... 모든 순간에 진심이지 못했던 나를, 미처 배려하지 못하고 무례했던 나를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인연들을 생각하면,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 


 나는 K의 마음을 모른다. K가 어떤 심정으로 토토 엄마의 연락을 피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모른다. 토토 엄마와만 연락을 끊은 것인지, 모든 친구들에게 잠수를 탄 건지 모른다. 앞으로 영원히 토토 엄마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셈인지, 언젠가는 연락을 할 셈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의 오랜 인연을 옆에서 지켜봐 온 나는, 두 사람 모두 상처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몇 년 뒤, 토토 엄마에게서 다시 K의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소식을 함께 축하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의 말 못 할 마음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의 인연이 상처와 후회보다는 아름다운 결실들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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