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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Dec 22. 2020

파란 부츠의 마법

: 마법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어서,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우리 집은 이사를 갔다.

 원래 살던 곳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갈 수 있는 동네였기 때문에 부모님은 전학을 권했다. 하지만 언니와 나는 기꺼이 먼 등굣길을 감수하기로 했다. 버스를 갈아타는 일이 번거롭긴 했지만, 길 위를 달리는 건 내 두 다리가 아닌 버스의 네 바퀴였으니 괜찮았다. 흔들거리는 손잡이를 붙잡고 2~30여분 동안 서 있느라 다리가 뻐근한 정도는 견딜만했다. 정작 등굣길이 힘들었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정류장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700미터 정도였다. 지금의 내 걸음으로는 10분이면 갈 길을, 그 시절의 나는 곱절이 걸렸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에서 앞 두 줄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던 내 작은 키로는 보폭을 아무리 크게 벌려보아도 한계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700미터가 평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 두 개 있었는데, 언덕을 오를 때마다 걷는 속도는 반감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멀고 지루한 길인데,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길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것 같았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에는 양말이 홀딱 젖었다. 그래도 여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은 끔찍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엉덩방아를 찧을까 엉거주춤 걷느라 더 오랜 시간을 지체했다. 내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참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법이 일어났다.

 이듬해 겨울, 아빠가 부츠를 사 오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방한용 부츠였다. 발목에서 한 뼘이 더 올라오는 부츠 안쪽에는 폭신한 충전재가 들어있었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이지만 발목 부분에 파란색 띠가 눈에 띄었다. 신발 바닥도 선명한 파란색이었는데, 한가운데에 '아이젠'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한 쇠붙이 하나가 붙어있었다. 병뚜껑만 한 크기의 쇠붙이를 뒤로 젖히면 뾰족뾰족한 면이 드러났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안된 것이다. 눈 위에서는 아이젠을 드러내고, 눈이 쌓이지 않은 맨 땅(아스팔트)에서는 쇠붙이가 망가지지 않도록 다시 안으로 접어야 했다.

 그런데 귀찮았다. 눈 덮인 곳과 맨 땅이 자주 반복되었다. 손이 시리기도 했고, 신발 바닥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쭉 아이젠을 드러낸 채 걷기로 했다. 한 걸음, 두 걸음 파란 부츠가 맨 땅 위를 밟는 순간이었다.

 또각! 또각!

 아스팔트와 신발 바닥의 쇠붙이가 만나는 소리. 그 소리는 절묘하게 하이힐의 굽 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마법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어서,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어느새 하이힐을 신은 멋쟁이 아가씨로 변신했다. 더 이상 초딩이 아니었다. 또각또각!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이힐(더구나 발이 전혀 아프지 않은 마법의 하이힐이었다.)을 신고서라면, 길이 끝없이 이어져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유치한 상상을 하며 걷는 동안, 언덕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린 내게는 마법이었다!


 언덕길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에 있다. 다만, 마치 세탁기에 잘못 들어간 울니트처럼 부피가 줄어 보인다. 훨씬 짧고 가깝게 느껴지는 길을, 이제는 차로 1~2분 만에 지나가버린다. 다시 그 언덕길을 걸어 올라갈 일이 없는데도, 아주 가끔씩 꿈을 꾼다. 꿈속의 배경은 캄캄한 밤인 경우가 많고, 나는 시간에 쫓겨 가파른 경사를 온 힘을 다해 달려 오르는 꿈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내 등굣길이었던 그 길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부정적인가 보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경험했던 파란 부츠의 마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멀고, 길고, 지루한 언덕길은 우리 동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살아보니 삶 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언덕길이 나타났다. 어떤 언덕은 오르기에 너무 거대해 보여서, 다른 길로 돌아가게 만든다. 어떤 언덕은 다 올라온 것 같다가도, 가파른 경사가 다시 시작된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견디며 걸어야 하는 길도 있다.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종종 어린 시절 내 파란 부츠를 떠올린다. 파란 부츠를 신고 걷던 그 길의 즐거움을 기억해낸다. 그토록 사소한 것에서 마법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시작된 마법이 나를 얼마나 강렬하게 이끌어주었는지를.

 그리고 틈만 나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가장 평범하고 소소해 보이는 것들 틈을 뒤적인다.

 여기 어디, 파란 부츠가 없나?

 곳곳에 수많은 파란 부츠들이 숨겨져 있는 상상을 한다. 운 좋게 파란 부츠를 다시 찾길 바란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내 파란 부츠를 당신에게도 전해 본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언덕길이 멀고, 힘들고, 지루하지만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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