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고생하고 말아!

: CHAPTER 2. 수술 & 무통주사

by 이막내작가

"아가씨는 어디가 아파서 왔어?"

맞은편 침대 아주머니가 운을 떼자, 병실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자궁근종 수술을 받으러 왔다는 내 대답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때까지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모두들 젊은 처자의 입원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넸다.

"암 아니면, 축하할 일이야~~"

"다행이네, 다행이야."

"그래~ 아가씨는 그냥 한 번만 고생하고 말아!"


수술 하루 전, 자궁근종을 축하받는 기이한 경험을 하며 51병동에 입원했다.

배정받은 5인실은 만실이었다. 나를 제외한 4명의 환자가 항암치료 중이었다. 한 분은 난소암, 다른 분은 자궁내막암을 치료 중이었고, 또 한 분은 며칠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으셨다고 했다. 다른 한 분은 정확한 병명을 듣진 못했지만 항암치료를 받고 계셨다.

수술을 앞두고 걱정했던 마음이 쑥 들어가 버렸다. 다른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걱정은 걱정도 아니었다. 60대 나이에 몸이 깡마른 아주머니는 아주 오랜 시간 병원생활을 하고 계셨다.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 장 마비가 와서 입원 중이라고 하셨다. 이야기만 들어도 얼마나 힘든 투병생활일지 감히 상상도 못 하겠는데... 되려 내게 걱정 말라고, 암이 아니니 다행이라고, 그냥 한 번만 고생하고 말라며 격려해 주신다. 그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이상했다.


오후부터 다음날 수술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초음파 검사와 항생제 반응 검사를 받고, 저녁부터는 금식과 함께 장 세척제를 먹어야 했다. 장 세척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간호사에게 들은 복용법을 복기하고 있는데, 나를 지켜보던 옆 침대 아주머니가 말을 건네 오셨다.

"그거 먹는 거 너무 끔찍해. 나는 이제 약상자만 봐도 속이 울렁거려."

맞다. 내 경험상으로도 장 세척제를 먹어야 하는 일은 끔찍하다. 그나마 많이 발전했다. 예전처럼 들기도 힘든 4L 약수통 대신, 8번 나눠 먹을 수 있도록 낱개 포장된 가루포와 500ml 플라스틱 통이 나왔다. 더구나 맛도 '레몬맛'이라고 약상자에 쓰여 있었다. 그럼에도 그 레몬맛이 어떤 레몬맛일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헛구역질이 났다.

약상자를 옷장 아래로 슬며시 밀어 넣었다. 아주머니 눈에 띄지 않게 약상자를 열어 한 포씩 꺼냈다. 총 8포의 가루를 물에 타서 30분 간격으로 먹는데, 4포째부터 목구멍이 거부하기 시작했다. 장 세척제가 꿀꺽 넘어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꿀꺽이 아닌, 꾸역꾸역으로 방법을 바꿨다.

5104 병실 사람들은 9시가 넘으면 불을 끄고, 각자 침대 주위로 커튼을 쳤다. 일찍 잠이 드는 사람도 있었고, 침대 머리맡 작은 전등을 켜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9시 이후에는 더 이상 서로 말을 하거나,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하는 나는 병실 밖 휴게실에 나와 남은 약을 마시고, 기다리고, 또 마셨다. 자정이 넘어서야 약상자를 비웠다.

그 사이 퇴근을 하고 병원으로 왔던 남편이 내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갔다. 수술을 앞두고 긴장한 탓에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장 세척제 효력 때문에 잠은 거의 자지 못했다. 단언컨대 장 세척제와 유방 X-ray 촬영 방법은 환자를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는다.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반드시!


수술은 다음 날 오후였다. 전날 저녁부터 금식 중이어서 힘이 없기도 했고, 누워 있으라는 간호사 말에 아침부터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오후 2시 반이 되어서야 수술실로 이동했다. 어째서인지 멀쩡하게 걸을 수 있음에도 병실에서부터 침대채 이동했다. 양갈래로 묶어 놓은 머리 때문에 꼴도 우스웠다. 그렇게 묶으라고 간호사가 아침 일찍 고무줄 두 개를 놓고 갔었다. 침대가 병실을 빠져나가는 동안 5104호 사람들이 잘하고 오라고 한 마디씩 응원을 해주셨다. 어쩐지 민망했고, 어쩐지 기운이 났다.

침대 옆을 따라오던 남편과는 수술실 앞에서 헤어졌다. 수술방 앞에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간호사가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곧이어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수술방 안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라,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마치 실험쥐가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 맨 정신으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경험은 정신건강에 썩 이롭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세심한 배려를 받으며 수술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링거줄에 주사기 바늘을 꽂는 게 보였다. 곧이어 팔을 타고 따끔한 느낌이 흘렀다. 기억이 끊겼다.



아내가 수술을 했다.


수술실 앞, 넓게 열린 공간에 다인용 의자 세 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시선 앞에 걸린 커다란 TV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몇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옆으로 걸터앉은 한 아주머니는 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TV 옆 모니터에 아내의 이름과 '대기 중'이란 글자가 떠 있더니, 잠시 이리저리 서성이는 사이 글자가 '수술 중'으로 바뀌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부모님은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셨단다. 장모님은 "자네도 몸조리 잘하게" 하시며 아무렇지 않은 듯 통화하셨지만, 나중에 수술이 끝나고 아내의 목소리를 들을 적엔 울먹이셨다.

결혼 전에는 별일 없었던 아내가 결혼 이후 응급실에, 개복수술까지 받고 있다. 나를 따라 사람도 많고 공기도 좋지 않은 서울로 온 게 문제였을까? 아내의 수술이 나 때문인 것 같단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불안한 상념에 사로잡혀 두어 시간이 지날 무렵, 수술실 상황판 글자가 '수술 중'에서 '회복실'로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수술을 집도했던 나이 많은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혹은 모두 잘 떼어냈고, 지금 회복실인데 조금만 있으면 나올 거예요."


(위 부분은 수술실 앞을 지키던 남편의 글입니다. 적어준 글이 너무 감상적이어서 1/3로 편집당했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지옥에서 눈을 뜬 기분이었다.

물론 개인 차가 있겠지만, 내가 느낀 고통은 그랬다. 갑자기 밀려드는 통증에 어쩔 줄을 몰랐다. 무통주사를 맞고 있었음에도 추가로 진통제 한 병을 링거에 달고 근육에 놓는 진통 주사도 한 대 더 맞았다. 무통주사는 15분 간격으로 줄에 달린 플라스틱 버튼을 누르면 투약이 된다고 했다. 15분을 재고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내가 느끼는 통증의 정도에 따라 5분 간격으로 눌러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잠이 쏟아졌다. 남편이 자꾸 말을 시켰다. 말을 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숨을 크게 내쉬라고 한다. 만사가 귀찮았다.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마취가 완전히 깨기 전에 다시 잠들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보기 위함도 있지만, 아주 드물게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환자의 정신이 온전해질 때까지 잠이 들지 않도록 보호자에게 옆에서 계속 말을 걸게 한다. 숨을 크게 내쉬라고 한 이유는, 통증 때문에 본능적으로 숨을 크게 쉬지 못하는데,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폐가 쪼그라든다고 했다.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수술 전에 미리 얘기해줬더라면, 남편에게 짜증을 덜 냈을까?

수술 후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그제야 통증이 참을만해졌다.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정신이 들고 나니 그동안 몽롱했던 모양이다. 침대 옆에서 남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껌뻑이는 두 눈이 나를 찬찬히 살핀다. 이제 통증이 좀 가라앉았는지, 또 짜증을 내려는 건 아닌지,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내 얼굴에 정답이 있기라도 한 듯 부지런히 찾는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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