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입원을 했다.

: CHAPTER 1. 응급실행

by 이막내작가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이왕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으니 최대한 빨리 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 자궁근종 수술을 받겠다고 기다리는 환자가 나 하나뿐은 아니었다. 수술 날짜는 순전히 의사 선생님의 스케줄에 따라 2주 뒤로 정해졌다.

그 사이 호르몬 치료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수술이 끝나고 재발을 막기 위해 약 6개월 간 호르몬 치료를 하지만, 수술 전에 시작하면 자궁근종의 크기를 줄일 수 있어 수술이 쉬워진다고 했다. 똑같이 배를 째는 내 입장에서는 그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내 주치의는 그렇게 말했다.

호르몬 주사를 맞고 일주일이 지나서, 수술을 위해 하루 전날 입원을 했다. 수술 후 회복까지 약 1주일 간 있게 될 K대학병원 51 병동은 낯설지 않았다. 두 번째 입원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입원.

그날은, 단언컨대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집에서 혼자 늦은 점심을 먹었다. 무엇을 하느라 점심이 늦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뒤늦게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뭘 차릴 새도 없었다. 갓 지은 밥에 조미김 한 봉지를 텄다. 평소에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더 빨리 먹었던 기억은 없다. 밥을 먹고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배가 아파왔다. 빨리 먹는 습관 때문에 잘 체하기도 해서 복통에 익숙하지만, 그날의 복통은 무언가 달랐다. 그냥 뱃속이 다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손으로 내 뱃속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화장실 안에서 뒹굴었다. 기어 나오다시피 거실로 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119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아내가 입원을 했다.


새해를 갓 지난 1월이었다. 그 해 겨울은 한강이 얼었단 소식이 연일 들려올 만큼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 아침도 평소처럼 추웠지만,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조금 풀렸다. 늘 그렇듯 자주 가던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고, 언제나 가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어제도 했고, 오전에도 하던 일을 이어서 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일상 속에 숨어 있던 그날의 사건은 마치 모퉁이를 돌아드는 사람들의 다리를 걸어 자빠트리는 고약한 놈처럼 불쑥 나타났다. 한참 일에 집중하던 오후 3시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배가 너무 아파. 119 불렀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구급차가 언제 도착할지, 어느 병원으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 집으로 출발했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가는 동안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막힐 일 없는 도로에서 신호대기에만 몇십 분씩 흘러가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아내는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후였다. 택시를 돌려 K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보호자 신분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어쩌면 마음이 급해서 복잡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서류에 몇 가지 사항들을 적고 보호자 출입증을 받은 후 들어간 응급실에는 침대마다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북새통 한가운데 아내가 있었다.

이미 진통제 하나가 들어갔다고 간호사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저 옆에서 아내를 지켜봤다. 응급실에 들어온 지 1시간이 지나도록 아내의 복통은 가라앉지 않았다. 진통제 탓인지 아내는 내게 어지럽다고 했고, 잠시 후 수액이 추가로 처방되었다. 30분이 더 지나서야 통증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경찰서, 여자 목욕탕 그리고 응급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앞으로도 절대 갈 일 없을 거라 여겼던 세 곳이었다. 내게 응급실은 영화에서나 익숙한 장소였다. 이름만 익숙하지, 실상은 생경한 이곳에 아내가 누워 있다. 주변으로 환자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갔다. 갓난쟁이 아이의 입안이 찢어져다면서 응급실을 찾은 가족이 다녀갔다. 어디가 아파서 응급실을 찾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젊은 남녀가 응급실에 들어왔다가 금세 나갔다. 거동조차 불편한 노년의 환자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기 위해 침대 채 옮겨 다니더니, 응급실을 떠나 어딘가로 갔다.

그제야 이런 일이 우리에게만 찾아온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통증이 잦아든 오후 5시경부터 아내는 검사를 시작했다. 휠체어에 앉아 X-ray와 CT촬영을 다녀왔다. 소변 검사를 위해 몸을 겨우 일으켜 화장실도 다녀왔다.

아내가 왜 아픈지가 가장 궁금했다.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온갖 최악의 상황만 상상하던 내 머리가 쓸데없는 걱정을 멈출 것 같았다. 검사 결과를 듣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기다리는 시간은 사실과 상관없이 '한참'이 되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검사가 끝났다. 오후 6시 반쯤 산부인과 의사가 찾아왔다.

검사 결과 장폐색이 의심되는데, 난소에 있는 혹이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혹의 위치가 좋지 않아 장을 압박할 수 있다고 했다. 우선 일반 병실로 옮긴 후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몇 가지 설명을 하고 보호자란에 서명을 받아갔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저녁 8시가 넘어서 아내는 산부인과 병실을 배정받았다.


(119에 신고한 후,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올라가기까지의 기억은 남편이 대신해주었다.)


꼬박 4일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금식이 이어졌다.

화장실을 가는 것 외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말라고 당부를 받았다. 당부도 당부지만, 진통제를 수시로 맞으면서도 복통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 실려올 때의 통증에 비하면 반에 반에 반에 반도 못 미치는 것 같았지만, 이틀째가 되어서야 겨우 양치를 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몰골을 걱정할 처지가 못되었다.

장폐색은 달리 치료방법이 없다고 했다. 금식하는 것, 배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 저절로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해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내 몸 하나 어찌하지 못하고 이틀을 보냈다.

2일 차 밤부터 진통제 양이 줄기 시작했고, 4일 차에 퇴원을 했다. 퇴원 전에 수술이 결정되었고, 수술 날짜는 1주일 후 외래진료 때 결정하기로 했다. 혹, 그사이 다시 복통이 오면, 바로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전화를 하라며, 주치의는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처음부터 내 주치의가 기술자였던 건 아니다.

(⌜기술자의 첫인상⌟편 참고)

응급실에 실려가 퇴원을 할 당시, 내 주치의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내 몸의 상태를 나보다 더 자세히 알고, 내게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복강경 수술을 할지, 개복수술을 할지 고민할 때에도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주는 것 같았다. 이런 의사 선생님도 있구나, 정말...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올법한 의사였다. 무척이나 안타깝게도, 그분은 3주 후에 다른 지역의 대학병원을 옮길 예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 주치의가 바뀌었고, 그렇게 기술자를 만나게 되었다.


2주 만에 K대학병원 51 병동에 다시 누웠다.

수술을 앞둔 밤은, 마음이 참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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