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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팔구일 Nov 26. 2022

K장남의 빛과 그림자, <수리남>

"우리 아버지가 베트남에 돈 벌러 가셨을 때 이런 기분이셨을까요?"

이름조차 생소한 낯선 땅 수리남,

초록의 우거진 나무들로 빽빽한 열대 에 가려진 코카인이란 비밀, 이는 마치 무화과나무로 거짓말을 감추려던 아담과 하와를 생각나게 한다.

인간은 거짓말쟁이고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는 걸 증명한다는 듯, 드라마 속 수리남은 나라 인구 3/4 이상이 마약산업과 연관된 상황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은 목사를 사칭한 마약유통업자 전요환(황정민 분), 그를 잡으려는 국정원 최창호(박해수 분), 그리고 최창호의 부탁으로 국정원 작전에 합류한 강인구(하정우 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마약을 둘러싼 악인과 그를 처단하려는 국가 권력이라는 뻔한 이야기는 '강인구'라는 K장남 캐릭터를 배치하며 고유함을 획득한다.


강인구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10대에 부모를 잃고 낮에는 소요산 정상에서 막걸리 팔았고, 밤에는 단란주점에서 일하며 동생들을 키웠다. 그는 적당히 타협하며 자기 몫을 챙길 줄 아는 비즈니스맨이었고, 단란주점 장사를 하며 볼꼴 못볼꼴 다 보아가며 자신의 자녀들만큼은 자기처럼 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국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리남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버린다는 홍어를 독점해 한국에 팔려는 야심을 품고 들어온 인구,

강도와 깡패가 판치는 수리남, 다짜고짜 자리세를 내라는 군부대의 등장에도 눈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믹스를 건네며 상생을 하자며 협상을 건네는 인구. 그 정도의 수완이라면 수리남 홍어를 싹쓸이하고도 남을 기세를 펼칠거라고 예상했건만 전요환을 만나며 그는 절친 응수(현봉식)를 잃어야 했고 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했다.


태어나 온갖 나쁜 사람들과 풍파는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한 인구 앞에 이성과 협상으로는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수리남에서.


하지만 강인구는 K장남의 기지와 생활력으로 전요환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는 전요환이 가진 것 중 유일한 진품인 박찬호 100승 싸인볼을 선물로 받는다. 이는 의심 많은 전요환이 강인구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강력한 증거다. 전요환은 왜 강인구를 좋아했을까?


전요환도 아버지가 그리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에게도 자신의 성적표를 봐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해주고, 돈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현실을 직면하게 해주는 진짜 아버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래서 한 눈에 강인구를 알아보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는 아버지의 고단한 전투를 담는다. 이는 윤종빈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 분) 캐릭터가 온갖 비굴함 속에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간과 쓸개를 다 내어주며 조직에서 살아남고, 영어를 잘하는 아들과 손자를 키워내는 승리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다만 강인구는 코카인을 아이들에게도 먹이는 진짜 악마 전요환을 죽이려했다는 점에서 정의롭고, 자기 아들만을 위한 아버지가 아니라 무엇이 바른 것인지 잃어버리지 않은 40년대아버지보다는 진보한 69년생 아버지를 담아냈다.

 

작품은 한-중-미라는 국가 간 외교의 관점으로도, 한국의 개화기 혹은 근대기 상황을 수리남과 연결지어볼 수 있다. 특히 포교를 한다는 명분으로 잔인하게 현지인을 살해하고 그들을 그 땅에서 몰아낸 열강의 이야기를 떠오르게도 한다. 혹은 국정원을 중심으로 본다면 개인의 가족과 재산, 사적인 것을 하등하게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는 가혹한 한국의 직장문화를 떠오르게도 한다.


필자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거짓말과 추악함으로 가득한 이미 잔때와 먼지가 풀풀 묻은 아버지, 그가 결국 수리남을 구했고 걷잡을 수 없는 악을 막았다는 거였다.


전요환은 사람들이 실재하지 않는 걸 믿으려 하기 때문에 마약에 환장한다고 말한다. 종교도 마찬가지의 이유라고 말이다. 전요환이 실재하지 않는 걸 있는 것처럼 꾸미며 사람을 현혹해왔다면, 강인구는 보고 싶지 않은 실재와 추악함을 매일같이 마주하며 살아왔다. 그는 카센터에서 직장이란 전쟁터로 걸어나가는 자동차란 도구를 고쳐주고, 밤에는 사람들이 근심과 한숨을 토로하는 단란주점에서 그들의 눈물과 쓴 뿌리를 대면했다.

어쩌면 전요환이나 강인구나 세상에 악을 덮어 쓰며 산다는 점에선 공통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인구는 자신처럼 삶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응수라는 다른 아버지를 연민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전요환은 '악'의 능력을 최대치로 키워 다른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싸이코패스로 군림했다.    


우리는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그 상황에 대한 변명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전요환이 돼버릴 수 있다. 직장에서 나보다 연약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그게 당신의 괴물수치다. 최창호 역시 나랏일을 한다는 이유로 국익을 명분으로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에 있는 강인구를 방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또한 전요환과 다르지 않은 그의 괴물성이다. 우리는 매순간 괴물이 될 위협에 있다.


그때마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 이 곳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이 누군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강인구가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전요환의 별장에서 코카인을 마시며 매질을 당하는 아이를 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결국 자신보다 내 자식은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루하고 간결한 이것이 가난한 한국을 수리남과 같은 과거에서 전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안에도 그림자가 있는 것은 맞지만. 우리는 전요환을 하나님이라 생각하며 끝까지 충성을 맹세하는 상준(김민귀)을 가엾게 여길 수 있을만큼은 어리석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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