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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팔구일 Nov 18. 2022

슈룹, 내가 너를 지키기 위한 방식

가장 안전한 곳, 엄마의 품 '슈룹'

엄마의 품만큼 안전한 곳이 있을까? 중국의 마지막 황제 이가 전쟁과 독살의 위험으로 밤새 잠 못 이루고 방공호로 달려갔던 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엄마의 자궁으로 향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마음 속엔 내가 어떠한 모습이든 나를 염려하고 걱정해주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슈룹,

순 우리말로 '우산'이란 뜻이다. 엄격과 지엄함이 가득한 궁궐에서 자기 스스로를 엄마로 지칭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화령(김혜수 분)의 종종걸음은 바로 내 새끼를 지키기 위한 엄마의 슈룹, 단단한 방공호 같은 거다.    


궁에선 말이다 본 것은 눈감고 들은 것은 잊고 하고픈 말이 있거든 꾹 다물거라. 옳지, 참거라 눈물이든 궁금증이든 소중한 걸 지키고 싶거든 말이다._4화 중  


조선시대 궁궐, 지금의 사교육 못지 않은 치열함이 있었다. 세자가 아닌 왕자들은 '종학'에서 공부하며, 혹여나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생길지 모를 그때를 대비한다. 현재의 주상 이호는 서자 출신이었지만 왕자들 중 가장 뛰어나 '택현'의 절차를 거져 임금이 되었다. 후궁 엄마들은 성균관 출신, 오늘날로 표현하면 수능 출제 위원을 과외 선생으로 초빙해 자신의 왕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애쓰는 중에 있다.


적통의 자리는 적통에게, 생명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고군분투 !


왕자들 사이에서 세자의 공부 동무 '배동'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건 야망,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특히 중전과 적통의 자식들은 '세자' 자리를 지켜내지 못하면 그 즉시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다.

가령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선 서울대 의대를 못가면 못가는 거지 죽음의 위협을 겪지는 않는다. <슈룹>은 보다 본능에 가까운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이 치열하게 적용된다. 같은 왕자여도 외척 세력이 누구인가, 어느 정치인이 뒷배가 되어주느냐에 따라 세력 균형이 이루어진다. 혈허궐로 목숨줄이 위태로운 세자, 망나니로 소문나 대비의 눈밖에 난 적통 대군들. 이제, 중전의 아들들은 서자의 아들들과 같은 위치에서 '배동'자리를 혹은 후대 왕위 계승을 놓고 싸워야 할 차례다.


흥미로운 것은 중전 임화령의 모습이 지극히 사랑스럽다는 거다. 사실 1화 첫 씬에서 자신의 아들과 밤을 지새운 기생집 소녀에게 "내가 원하는 건 모든지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화령은 '욕망' '엄격함' 혹은 '표독스러움'을 예상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식들이 그저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게 있게끔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는 보통의 엄마였다.


드라마에서 화령의 캐릭터를 어필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극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는 편이고, 대비 혹은 반대세력 앞에서 카리스마를 내세우거나, "엄마니까"와 같은 다소 밋밋하고 단조로운 대사들이 캐릭터의 매력을 뻣뻣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혜수 배우는 걸음걸이, 혹은 자녀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속상해하는 표정 등을 다채롭게 하여 무겁지 않으면서도 친숙한, 사랑스러운 임화령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특히 공진단을 먹으며 자식들을 위해 쏟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자신만 먹던 공진단을 신상궁에게 주며 "이제 자네도 빼도박도 못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만의 걸크러시와 따뜻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중전이 이야기하는 '모성'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올 여지가 있다. 꼭 적통의 자식만이 왕좌에 등극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적통이란 이유만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요구한다는 건 '수저론'이 급부상하는 요즘 세대와는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부의 되물림'이 정당화되는 이 시대의 모습을 <슈룹>이 옹호하는 건 아니냐이다.


3화에서 계성대군이 여자의 모습으로 살길 원한다는 것에 대해 화령은 그를 이해하고 품어준다. 계성대군 일화로 화령이 지키고 아끼는 것이 바로 '생명' '존재 그자체'를 지키려는 본능적인 모성임을 어필함으로써 드라마가 담고자 하는 '슈룹'에 정당함을 부여한다.

적통이기 때문에 지키려는 것이 아니다. 조선의 궁전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꼴을 못보는 공간이었기에, 자신을 지키고자 함이다. '왕좌'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왕좌'가 있어야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모습과도 닮았다. 살아가는 데 기본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너무 많이 늘었다. 때로 이 기본을 유지하겠다고 내 자신이 함몰되는 경우도 많다. 왕좌에 몰두하며 자신의 기본 신념과 가치관을 쉽게 내다버리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기본을 얻겠다는 명분으로 정작 지켜야 할 내 모습을 쉽게 잃어버리는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왕자들을 지키려는 엄마의 질주, 과연 목숨은 지켜질 수 있을까? 궁궐의 눈물은 멈추어질 수 있는 것인가?


협상의 달인, 피도 눈물도 감출 줄 아는 엄마의 슈룹 


세자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중전과 적통의 자리는 불안하여진다. 그러나 임화령은 위기의 때일수록 더욱 더 강력하게 지혜와 카리스마를 내세우며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무조건 안된다고 고집을 부리는 대신, 택현의 방식을 먼저 제안한다. 그리고 세자빈과 원손을 자기 입으로 먼저 폐위시키자는 말을 한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어 봬는, 권력자의 모습으로 돌변하는 듯 한다.

화령은 대비와의 날 선 대결에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임금에게 먼저 택현의 의미를 되살려 달라며, 가장 어진 이를 임금으로 뽑도록 해달라 간청한다. 택현을 대신들의 입맞에 뽑는 자리로 추락하지 않도록 말이다.


임화령의 캐릭터는 공정하고 상식적인 방식이 통하게 하기 위해선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어야 함을 반증한다. 자기 자식에만 열중하여 다른 것들은 보지도 못하는 맘충이 아니라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진정한 슈룹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어머니의 품에 머무르는 대군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위기를 타파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들을 보여줄 수 있다면 보다 탄탄한 슈룹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열심히 잘 달려 온 슈룹, 이번 주도 기대하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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