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서사의 시대는 막을 내린 걸까? 드라마 <허준>, <대장금>, <선덕여왕>처럼 한 사람의 일생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날은 멈춘 것처럼 보인다. 긴 서사보다, 전체 줄거리는 몰라도 좋으니 재밌는 장면만 모아놓은 '짤', 서사의 긴 기승전결보단 유튜브 브이로그, 먹방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다.
현상 자체만 집중하고, 복잡한 원인과 결과 혹은 근원은 알지 않으려는 요즘 세상은 말세이며 과거보다 후퇴한 것인가?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 베이스'론은 이젠 콘텐츠를 만드는 데 메시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이것들이 소비자들에게 향유되는가, 일명 '오타쿠 소비론'의 중요성을 포착했다.
SNL에서 <더글로리> 문동은 흉내를 내는 이수지 님이 적확한 예인 것 같다. 캐릭터가 대중들 사이에서 향유되고 그 캐릭터가 다른 콘텐츠로 재생산되는 묘미, 깜짝 놀랐던 건 SNL에서 뮤지컬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옥주현 배우가 출연한 편이었다. 뮤지컬이란 장르가 대중에게 완전히 스며든 것도 아닐텐데, 댄버스 부인이 혹독한 다이어트 훈련을 시키는 모습이 이토록 웃음을 일으킬 수 있다니 말이다.
정말 우린 멍청해지는 것일까? 멀게만 느껴진 지식이 우리 손으로 다가왔다. 가령, 변기가 막혔을 때 우리는 이제 바로 수리공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네이버 지식인, 혹은 유튜브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 유튜브 브이로그, 브런치 작가 같은 것도 방송 권력, 출판 권력,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허용됐던 것이 많은 이들이 콘텐츠 창작자로서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한 거니까.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걸 넘어서 창작을 할 수 있게 된 세상은 실보다는 득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결코 재앙이 아니다.
다만 인기에 영합하려는 현상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창작자의 개성,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이게 유행하니까' 시류에 편승하는 콘텐츠는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먹뱉ㆍ뒷광고 논란' 현상이 대표적이다.
자극적인 현상에 집중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진짜는 결국 빛난다.
성시경 아티스트가 자신의 유튜브에 힘들게 만드는 노래 콘텐츠는 20만이 보는 데, 먹방 영상은 100만이 넘게 보는 현상에 대해 한탄한 적이 있다.
아티스트로서 씁쓸하기도 하겠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보면 성시경이 먹방을 하는 거라 100만이 넘게 보는 거다. 그의 먹방 콘텐츠에 노래는 나오지 않더라도 그의 노래와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걸 보는 거다.
근원을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 핵심만 요구하는 지금일수록 더 좋은 알맹이를 내 놓기 위해, 역설적으로 더욱 고전을 읽어야 하고 좌우 맥락을 분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높아졌다. '역주행 현상'이 이를 반증한다.
성실하고 꾸준함을 놓지 않고 날마나 써내려가는 한 줄, 아무도 보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 싸우는 글을 내려놓아서는 안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