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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팔구일 Jun 24. 2023

너에게


삼개월 전 퇴사를 했다. 회사의 일원으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실패감,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불안감에 마음이 턱턱 막힌다. 서른다섯 살의 나이가 창피하다.

이제 곧 불혹이 찾아올텐데,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어떡하지?


10년 동안 방랑에 가까웠던 시간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시간엔 부디 흔들리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나에게 써본다.  


11년 전, 스물네 살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너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도 다른 사람의 숟가락 젓가락을 챙기고 물을 떠오는 걸 어색해하고 불편한 티를 못 숨기는 너인데, 갓 처음 입사한 회사의 점심시간이 얼마나 곤욕스러웠니? 회사에서의 첫 점심시간, 하필 그날의 메뉴는 생선구이였어. 커다란 생선(아마 임연수 같은 거였던 거 같아)을 어떻게 찢어발겨야 할지 몰라 생선엔 손도 못대고 초록색 나물만 먹었던 그날이 생생해.  갈비탕을 먹는 날, 가위를 달란 말을 해야 하는 대신 굳이 안갖다줘도 되는 반찬을 큰 소리로 더달라는 센스 더럽게 없는 너, 그 모습은 여전해 다같이 먹는 식사 시간엔 저절로 작아지는 본다. 지금도 가족과 먹는 게 아니라면 생선이나 고기집 나눠서 떠먹어야 하는 탕집은 어렵지.


2012년보다 2023년 세상은 많이 너그러워졌고 친절해졌어. 이런 거 잘 못하는데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라고 한 번은 용기내어 말해봐도 좋을 거야.


너는 사람과의 관계를 힘들어하지. 분명히 네가 억울한 점도 있는데 상대방이 쏘아대면 그거에 기가 죽고 무서워서 우선은 죄송하단 말을 하지. 마음에 하지 못한 말이 쌓이고 쌓여 못견딜만큼 힘이 드는 순간 그만둔단 말을 하곤 했어. 일이 적성에 안맞는다는 말을 하며 끝까지 너의 마음은 숨겼지.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너의 입장을 말하는 건 잘못이 아니야. 미움받을까봐 두려워서 그런 거 알아.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더 관계를 해나갈 수 있는 상대방을 차단해버리기도 했다는 거야.  말하는 게 힘들다면 침묵해도 좋아.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 애써 밝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너의 마음을 갉아먹어. 늘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욕심의 안경을 천천히 벗어보자. 사람을 향한 문이 조금씩 열리지 않을까?


이거 중요하니까 다시 말할게. 기분이 상하면 일단 침묵하고, 내 진짜 마음을 꼭 일기장이든 어디에든 기록해야 해. 가짜 평화를 만들려하지마! 가식은 결국 상대방도 숨 막히게 할테니까.


너는 직장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했어. 주일 예배를 드리며 받은 따뜻함과 충만함은 월요일부터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았어. 날마다 문제는 발생하는데 해결되는 일은 없어 막막하고 두려웠어. 기도를 해도 넌 담대해지지도, 두려움이 없어지지도 않았어. "평생 찌질하게 살아라." 손절한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의 저주가 10년 이상 묶여 있는 것 같았지. 다른 사람들은 자석처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잘 찾아가는 것 같은데, 왜 넌 항상 튕겨질까. 이건 네 잘못처럼만 여겨지고, 죄인으로, 죄책감이 지금도 너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어.


널 옹호하진 못하겠다. 맞아. 객관적으로 넌 사회생활 못해. 어느 소설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그게 니 문제이기도 해. 타인은 불편한게 당연해.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 그가 나의 연약함을 알아채고, 날 싫어할거라 지레 겁먹는 것. 그에 대해 책임도 노력도 하지 않으려는 건 너의 잘못이야. 언제까지 숨어있을래.


사람은 쉽게 변하지는 않아. 35년 찌질했는데 앞으로도 찌질함은 내 친구로, 공기로 함께하겠지. 체념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나는 너를 응원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그 말 해주고 싶어서.


좋은 사람인것처럼 보이기 위한 욕심이 동기였던 거겠지만, 넌 니가 할 수 있는 선에선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어.누군가에겐 그런 너의 존재 자체가 민폐고 무개념이었겠지만, 그게 니가 할 수 있는 차악이었어.


이젠, 누군가를 위한 사람이 아니라 내 모습 이대로 서 있어보고 싶어. 사회에선 살아남지 못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향해 가보자.

이 모습이 우습지 않게 분명 하나님이 연약한 나를 위해 일해주실거야.


부끄럽지 않게 성실하자. 제발 노력하자.

먼지 원아, 약해지지 말자.

일어나자.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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