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엄마의 '오만과 편견']

2. 태어나기도 전에 방송 출연?

by 머루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는 아기 엄마가 되기에 지나치게 어린 나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적당하다'라고 우기기엔 또 젊은 나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회적 인식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가족 중 누구 하나 출산을 반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만 사회생활의 맛도 제대로 보기 전에, 계획보다 빠른 임신을 한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친구들은 한창 공부한다, 직장 생활한다 바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데 나는....??'

'다들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데 나는...?'


임신 기간 내내 이런 마음이 불쑥불쑥 떠올랐고, 출산 후에도 빨리 산후조리 끝내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시작해 보자는 조급증을 만들었다. 아이를 기필코 잘 키워야겠다는 필요 이상의 의지도 활활 타오르곤 했다.


지금, 그때의 나에게 한 마디 해 줄 수 있다면...

"넌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아이 키워 놓고 창업해서 원 없이 일하게 돼.

친구들이 육아에 지쳐갈 때 홀가분하게 여행도 하고 말이지."

이럴 때 보면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


주간신문의 취재기자로 일했던 나는 임신과 함께 직장을 그만뒀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취재를 다니고, 일주일에 최소 한 번, 마감날이면 밤샘 근무를 해야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땐 회사에서도 배부른 직원을 '상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다른 업종은 몰라도 나는 당시 배가 나온 상태로 취재 다니는 기자나 에디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럴 때 보면 세상은 또 부조리하다.




임신 기간 동안 병원 검진을 받으면서 한 번도 딸인지 아들인지를 묻지 않았다. 당연히 궁금했지만 '짜~잔' 출산할 때 알게 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태동이 유난히 심해서 '아들인가'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편견이었고, 튼튼하면서도 활동적인 딸이 태어났다.

출산이 가까워 오면 산모가 묻기도 하고, 의사가 힌트를 주기도 한다는데 그러지 않은 것으로 봐서 우린 꽤나 잘 맞는 의사와 산모 사이였던 것 같다.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주변의 산모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내 배를 구경할 만큼 태동이 심했던 덕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모 방송국에서 태아에게 특정 클래식을 들려줬을 때의 반응을 초음파를 통해 확인하는 뉴스를 내보낸다고 했다. 병원 측에서 나랑 또 다른 산모, 이렇게 둘을 추천했고 우리는 초음파실에 나란히 누워 '실험'에 동참했다. 물론, 가족분만비 50%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이 있었기에 선뜻 응했다. 며칠 후 지상파 방송 뉴스에 초음파 화면이 나오긴 했지만 그게 내 뱃속 초음파인지 아닌지 솔직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서 지금도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때 카메라 앞에 누워서 들었던 그의 음악이 떠오른다. 아이가 커서 방송 PD가 꿈이라고 했을 때는 '태어나기도 전에 방송 출연을 해서 그런가' 하며 우리끼리 웃었다.


출산 준비물로 데려 왔던 오리. 최소 2001년 생 일 테니까 어느덧 청년이다. 아이가 생기면 사물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혁명적인 일인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태동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꿈을 꾸곤 했다. 남성들이 민방위도 끝난 나이에 다시 군대 가는 꿈을 꾸는 것처럼.


잠시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출산이 끝나고, 주는 밥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어도 당당한 산후조리의 시간이 지나자 한 생명을 잘 지키고 키워내야 한다는 무게가 스물일곱의 어깨에 고스란히 얹혔다.

그리고 지나친 책임감과 의지는 때로 엉뚱한 일에 힘을 빼게 해 사람을 지치게도 한다는 걸 뒤늦게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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