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띠 여자가 어때서?]

3. 엄마아빠 성을 모두 넣어서 지은 아기 이름

by 머루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편견이나 무지가 담긴 말을 듣게 될 때가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교회를 안 다니세요?"

헉,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아이를 위해 늘 기도한답니다.


"말띠 해에 여자 아이 낳는 거 좀 꺼려지지 않으셨어요."

네? 말띠가 어때서요...?


이건 약과.

"어떻게 이런 동네에서 아이를 키워?"

가까이 지내던 지인의 충격적인 말에 제대로 대꾸도 못했다. 뭐 저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나,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말이 아이 키우는 내내 떠올랐고, 나조차도 '아이를 교육적으로 너무 열악한 동네에서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오염된 언어, 잘못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심지 있는 부모가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2002 월드컵둥이는 말띠다. 그중에서도 흑말띠라나?

당시 여자아이 낳기를 꺼리는 분위기는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을 넌지시 건네며 '왜 굳이?' 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 바야흐로 2000년대가 시작됐는데도 이런 말이 나오다니. 출산할 때까지 의사에게 단 한 번도 성별을 묻지 않았던 건 그런 분위기에 대한 반감 같은 것도 일정 부분 깔려 있었던 것 같다.


통계청 조사를 찾아보니 2002년 출생아 성비는 109.9명이다. 여아 100명 당 남아 수가 110명 정도 된다는 의미. 역시, 성비 불균형이 다른 해 보다 높은 편이다.


솔직히 아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남편이 외아들이긴 해도 대를 잇는다는 둥 그런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시댁에서도 그런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여성으로 사는 게 더 크고, 더 많은 어려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남성대비 여성 임금비율.jpg

출처 :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1인 이상 기준)


우리나라 여성은 남성보다 31.2%(OECD평균은 12.1%) 정도 임금을 덜 받는다. OECD 주요 회원국 중 남녀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 자리를 무려 20년 넘게 지키고 있다.

*국정모니터링시스템 e-나라지표에는 이 같은 남녀임금격차의 이유를 '출산과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 후 재취업할 경우 종사상 지위가 낮고 고용안전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정부 부처의 분석이 실려 있다.


나 역시 경력단절로 재취업이 쉽지 않았고, 직장에 매여 있으면서 아이를 키울 자신도 없어서 아이가 10살 무렵 창업을 선택한 바 있다. 나도 나지만, 딸이 사회에 진출할 나이가 되고 보니 저런 통계가 더 서글프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남녀임금격차는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독박 육아로 인한 만성적인 수면 부족,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이 곁을 맴돌았지만 무조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잘 먹고, 잘 웃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성을 모두 따 아이 이름을 지었다.

(이건 전혀 예상 못했던 소득(?)이지만 아이는 학교에서 양성평등 글짓기를 할 때마다 상을 받아왔다. 자기 이름에 얽힌 썰을 풀어서....)

백일 무렵의 딸.jpg 백일 지났을 무렵의 딸. 무슨 꿈을 꾸는지 자면서도 웃는다. 이 맛에 아이 키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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