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비용을 치르며 배운 ‘세계시민의 매너’, 저작권!

by 머루

여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저작권이라는 말이 오가는 홍보기획사. ‘모 회사는 라이선스 없는 폰트를 썼다가 얼마를 물어줬다더라’, ‘어느 사진작가는 별생각 없이 거리의 인파 사진을 잡지에 게재했다가 초상권 침해로 소송을 당했더라’, ‘누구는 3년 전에 제작한 영상물 때문에 뒤늦게 법무법인의 내용증명을 받았다더라’ 등 저작권을 둘러싼 얘기는 언제 들어도 복잡하고 심란하다.


특정 기관이나 단체의 의뢰를 받아 출판 인쇄물이나 광고 영상물을 제작하는 홍보기획사 종사자는 창작자와 이용자의 어디쯤엔가 위치하는 것 같다. 유능한 기획자는 다른 이의 기존 창작물을 밑거름 삼아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낼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15년 전 홍보기획사를 창업했을 때 저작권은 무조건 피하고 싶은, 두려운 단어였다. 제대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과 당장의 업무 처리에 바빠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직원들의 저작권 위반에 따른 비용을 몇 차례 지불해야 했다. 라이선스는 있지만 이용 범위를 확인하지 않고 특정 이미지를 사용했던 디자이너, 저작권자가 따로 있는 사진을 사내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착각하고 이용한 편집자, 라이선스가 만료된 폰트를 컴퓨터에서 지우지 않고 그냥 놔뒀다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직원까지 잊을만하면 저작권 문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런가 하면 회사 홍보와 자료 축적을 위해 직원들이 애써 창작해 블로그에 게재해 둔 원고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거나, 편집 디자인 일부를 그대로 활용하는 등 저작권 침해를 겪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용역계약을 체결한 후 일을 진행할 때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가장 흔한 사례로는 계약서 상에 2차적저작물에 대한 문구가 없음에도 별도의 협의 없이 2차적저작물을 생산한 후 문제 될 게 없다고 우기는 클라이언트들이었다. 홍보기획사 입장에서는 ‘갑’인 클라이언트에게 매번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때로는 항의하고 어느 때는 눈 감기도 하면서 그렇게 문제를 넘겼다.


그러다 경기도 어느 시의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공공기록물부터 개인의 소장품, 해당 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과 영화는 물론 민요 등의 소리 채취, 사진, 동영상까지 그야말로 그 지역과 관련 있는 방대한 기록물을 한자리에 모으는 작업이었기에 저작권 문제는 가장 ‘뜨거운 감자’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두가 저작권을 민감하게 따져가며 일해야 할 순간이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 저작권은 개념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었다. 다만 경우의 수가 많아 판단이 명확히 서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기존의 상담 사례를 기반으로 저작권 침해 여부를 확인하면 가장 쉽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기록물 수집 및 취재를 갈 때는 기증 증서를 늘 지참했으며 무엇보다도 기증자 혹은 창작자와 직접 소통하며 사업의 취지와 향후 계획 등을 설명하고 저작권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공공기록물 중에는 출처만 표시하면 저작권 문제없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도 많았고, 이용 조건이 애매할 때는 해당 기관에 문의하면 비교적 신속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1년여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어쩌면 저작권 문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지식을 넓혔다는 점이 큰 성과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저작권 분쟁은 단순한 무지보다는 ‘이걸 쓴다고 누가 알겠어?’ 하는 안일함과 내가 혹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게 귀찮아서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1인 미디어 창작자가 다수인 시대, 저작권은 남의 권리도 지키고 나의 권리도 지키면서 일하고 창작하려는 세계시민의 ‘매너’ 같은 존재가 됐다. 게다가 궁금한 점을 한번 쭉 짚어보고 나면 창업 초기의 나처럼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참, 프로젝트의 성과는 또 있었다. 사업을 발주했던 지방자치단체가 아카이브를 진행한 과정과 결과물을 모아 책으로 발간했고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 대상을 수상한 것.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기존 창작물에 대한 이용 방법을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활용해 풍성하고 가치 있는 저작물을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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