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을 날리다
마음이 급해지면 행동이 섣부르고 허를 찔린다. 돌이켜보면 노력을 쏟아부어도 부족할 만큼 꼼꼼해야만 하는 명백한 일이었다.
나는 어두운 동굴 속 불을 켜 환해진 것처럼 전셋집을 찾아냈다. 그때쯤 어린 딸 둘을 데리고 집을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기에. 그만큼 눈을 뜨면 몇 날 며칠 주변을 물색하고 파고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될 정도라 과장도 아니었다. 그런데 들어갈 집의 등기를 떼보니 생각보다 많은 빚이 있었고, 우리는 표정이 곧 어두워졌다. 등기엔 마무리되지 않는 많은 빚의 흔적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어쩌나…" 하는 말이 터져 나오고 의문이 가득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찾은 집이었으나 계약하기 전, 고심이 오가고 주저하기를 수십 번. 그러던 중 남편과 나의 망설임의 낌새를 눈치챈 집주인은 집으로 우릴 초대했고, 통장까지 보여주며 집의 이자는 꼬박꼬박 갚고 있다고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어리석게도 주인의 적극적인 모습에 점차 믿게 되었고, 그게 빚의 바람막이인 줄 착각하고, 걷었다 폈다 하는 의구심의 생각을 접었다. 생각보다 싸고 찾기 힘들었던 전셋집이었던 탓에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어쩌면 스스로의 가스라이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전셋집 구하는 것에 왜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깊게 파고들었는지, 미심쩍은 속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턱대고 들어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몇 개월을 거주한 지 어느 날, 집주인아주머니가 애매한 서류를 들고 낮쯤에 집에 방문했다. 서류는 단지 이 집에 사는 사람을 확인하는 서류라 말했고, 사인만 해주는 단순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책임을 직무유기한 듯 무신경하게 사인을 했고, 그때만 해도 그 시점에 집이 경매로 넘어갈 거란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상함을 느꼈으면서도 일상의 끓는 생각으로 집 일을 관심밖에 둔 것이었으니 신중함이 여간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경매는 무섭게 진행되었고, 송달장으로 보이는 우편물이 집 앞에 난무했다. 남편과 난 서로를 탓하며 싸우고, 어떨 땐 드러누워 식음 전폐하기 바빴다. 하지만 우린 아파도 너무 아픈 돈이었지만 집주인은 생각보다 태연하며 싸늘했고, 우리를 마주칠 때도 일말의 미안함도 없었다. 오히려 '너희들이 잘 안 알아본 탓 아니냐'는 듯 연신 실쭉 대는 모습이었다. 집을 들어올 때의 홀리듯 나온 주인의 상냥함은 거짓이었고, 그 상냥함에 편승해서 들어온 우리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맞아 들어갔다. 법원을 찾아갔지만 세상은 냉철한 법 아래 더 냉정했으며 현실은 겹겹이 쌓인 눈보다도 차가웠기에. 그 집은 1순위 은행과 더불어 빌린 곳의 빚잔치를 하고, 우리는 후순위라 전세금을 그냥 다 날리는 입장이 되었다. 지역 보장 전세금도 해당되지 않았던 우린 그냥 바닥으로 내몰릴 현실이었고, 협상카드는 없는 답답한 실정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누구에게 의지를 할 건더기조차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경매로 집을 싼 새 주인이 300만 원 정도 주면서 월세를 가는 여지는 남게 되었다. 그 돈을 들고 딸 둘과 작은 월세로 가는 발걸음이 썩 밝지 않았지만, 한 푼이라도 있는 게 낫다고 여기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간 집은 방과 부엌은 거의 하나이고, 화장실은 좁디좁았지만 용변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해야만 했다. 그런데 월세로 간 집주인도 2층에 사는 우리에게 집요하게 잦은 방문을 하며, 물이 새는 것을 비롯 집의 문제를 그쪽 네 탓이라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거기다 가족들은 얇은 벽에 몹시 추워했고, 함께 사는 주변마저 늘 소란스러웠기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때문에 남편과 나는 이사를 와서도 자책을 전제로 그 잘라내지 못하는 과거를 후회하며. 그래서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생각까지 미치고 별별 안 좋은 상황마저 끌어갔다. 물론 육체의 건강이 우선인 건 마땅하지만 그때의 상황에선 돈이 행복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말은 초라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딸들의 마음도 그 풍파의 시간들이 겨울에 터진 살보다 아리고 쓰렸을 것이다.
그러나, 끈끈했던 삶의 고리는 함께 시간을 버티게 했고, 소소한 행복들에 상처를 치유해 희망의 불씨를 갖게 했다. 그래서 매일 쏟아졌던 눈물. 그 눈물 사이를 비집고, 막다른 곳에서도 가족의 애(愛)가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
그래서 마침내 극복이란 단어를 남기게 했던 지난날, 비록 여전히 전세금을 잃은 후유증은 벗어놓은 허물처럼 지금도 남아 기억되고 있지만.
그래서 나는 돈 관계에서 사람을 못 믿는 증상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고, 나 자신의 어영부영하는 성격을 바로잡기 위해 지금도 간신히 노력 중이긴 하다. 얼마나 세상일에 신중해야 하는지 뼛속 깊이 전달되었기에.
타인을 속이고자 베푼 친절에 나를 보호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 그 기억이 다 아물어지지 않고 생채기를 남긴 것이다. 막상 그런 일이 소용돌이처럼 오면 딱히 손을 내밀고 비빌 언덕이 없다. 집주인도 사정이 있었겠지만, 하고 생각하기엔 집이 넘어가는 순간, 전세금이 내 것이 아니었던 그때의 황망함.
그래서 나와 다른 경우이겠지만 요즘 부쩍 전세사기가 급증할 때, 그때마다 나는 동질감에 눈물이 새어 나와 울컥한다. 정말 돈을 넘길 일에 절대 감정에 몰입되지 않고 모든 상황을 놓고 고려해야만 한다. 거짓을 가리고 속이려면 얼마든지 상대는 나를 안하무인격으로 덤벼들 수 있기에. 그들은 돈 앞에선 이미 상대에게 연민의 한 톨도 나누고 싶지 않다. 그래서 돈의 철저함은 세상 살아감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될 절대적 나의 방호벽이자 보호막이라고.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해도 불가항력적 사기꾼의 집요함에 그 방호벽조차 균열이 날 수도 있지만, 또 그때는 나를 탓할 시간에 일어나, 시간의 운명에 따라가길 기원하며. 그건 쉽지 않은 일이고 절벽에 서 있는 경험이니 겪어보지 않으면 될 일이 우선이다. 그래서 집을 구할 땐 어떠한 경우라도 보고 알 수 있는 자료와 정보를 지니고 맞대응하길.
나는 요즘 아이들의 독립이 결부되어 그 입장에 또 한 번 나를 각성하고, 전세금을 잃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 되길 진심을 다해 염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