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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노리는 사람들

꺼림칙한 유혹

by 양다경


바람이 솔솔 부는 아침, 두 자매가 있다. 중1, 초 4이다. 두 자매는 언덕을 올라 슈퍼 앞,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 섰다. 학교 가는 시간을 너무 딱 맞춘 것 같아 바쁜 기색이 얼굴에 만연하며. 때문에 버스가 내려오는 언덕 위를 동생은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버스 바로 오겠지, 언니야~" 하고 땅을 발로 헤집으며 묻는 동생. "엉 빨리 올 거야 걱정 마" 언니는 그런 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려 감싸고, 저도 불안한지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뚫어져라, 보며 맞받아친다.

​그렇게 가방을 울러멘 자매는 등교를 하기 위해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마을 버스정류장 뒤로는 작은 슈퍼라 물건이 건성건성 있고, 맞은편에는 크디큰 교회 십자가가 아래로 자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은 출근 시간이지만 이른 아침이라 조용한, 그래서 그런지 산새 소리가 교회 앞 나무의 빈 곳을 찾아 알뜰하게 메운다. 오롯이 평범한 이들을 위한 소리. 동생은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서 있는 내내 언니에게 귀여운 응석을 부렸다. 한 가닥으로 바짝 묶은, 한올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깔끔하게 머리를 단장한 동생. 단발머리 언니는 그런 동생을 보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 미소를 띠었다. 그러다 그 와중에도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려 언덕 위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마을버스가 늦어지는 것 같다. 경로가 같은데 왜 늦는 것일까, 하며 내버려 둘 수 없는 학교 등교 시간을 체크하고, 입이 바싹 마르고 선생님에게 야단맞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러다 그 나이 또래가 하는 '쿡 쿡' 옆구리 미는 장난을 치고 "이제 올 거야" 하며. 여전히 올 버스에 힘을 싣고, 잡은 두 손을 놓지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 아침에 잠깐 본 만화의 뒤 스토리가 궁금해, 말하다 깔깔거리기도 하며. 그런데, 그때 반가운 마을버스가 아닌 낯선 봉고 차가 끼익, 하고 자매들 앞에 보란 듯이 섰다. 그리고 모자를 눌러쓴,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모자에 인상이 푹 눌려 묘한 느낌. 그 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두 자매를 곁눈질로 흘깃 보며, 그러다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노골적으로 자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라보다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담배를 하나 사고, 그리고 빼 물더니 연기를 뿜으며 다시금 자매들 앞에 우두커니 섰다. 자매 중 언니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남자를 쳐다보다 동생에게 시선이 옮겨갔다. 그때, "학교 가는 길이니?" 그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말을 던졌다. 자매는 생소한 느낌에 처음에 대답하지 않는다. "아저씨가 태워줄까, 태워줄게" 그 남자는 연신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을 걸었다. 말을 듣은 어린 동생은 코를 휘비적 거리며 입을 연다. "네? 아저씨가 태워준대 언니, 타고 가자, 차 안 와~ 응?" 동생의 말에 언니는 반동하듯 어린 동생을 매섭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돌려 그 남자를 바라보다 퉁명스럽게 "아저씨 우린 버스를 기다릴 거예요" 중학생인 아이의 말에 그 남자는 히죽 웃었다. "차비도 절약되고 좋을 텐데, 안 그래?" 포기를 모르는 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자비를 베푸는 듯 넌지시 유혹의 손길을 자매들에게 내밀고. 그 말에 어린 동생은 마음이 다시 흔들려 한 발이 앞선다. 언니는 동생의 그 모습에 '쿵쾅쿵쾅' 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팔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남자에게 한사코 거절하려는 눈치를 주며. "저희는 버스를 기다린다고요!" 하며 고개를 꼿꼿이 하니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얼굴이 유독 차갑다는 것을 느낀다. 남자는 여자아이의 말과 눈초리에 전혀 위화감이 없는지 말리지 않는다. 앞에서 계속 얼쩡거리는 모자를 눌러쓴 남자. "타지 그래?" 빈정대는 말을 입안에 씹듯이 뱉으며 물러서지 않는다. 그제야 슈퍼 안 아주머니는 이상한지 밖을 내다보려 고개를 쭈욱 뺀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눈치채고, 주변이 여의치가 않은지 냉랭함이 도는 얼굴로 돌아서더니 차에 오른다. 오른 뒤 힘들게 들어가는 시동을 걸며 곧 떠나버리고. 언니는 그 광경을 보고 안도에 후들대는 한숨을 쉬며. 그리고 동생의 손을 있는 힘껏 꽉 쥐었다.

​그리곤 아동 납치 사건이 뉴스를 떠들썩하게 하는 일이 빈번하고, 그들은 트럭이나 봉고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뉴스에서 경고를 하듯 보도되었다. 자매는 뉴스를 보자, 그때 일이 기억나 엄마인 내게 말했다.

​이 일을 딸에게 들은 후, 나는 그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호의든 호의가 아닌 것을 논하며 점칠 수 있을 만큼 너그럽지가 못했다. 왜냐면 남편 회사에도 아이를 잃은 동료가 회사를 그만둔 일이 생각나 음습하는 마음의 통곡을 가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표현하기도 송구스러운, 아이를 잃은 그분들은 배반한 현실로 극악으로 치달았을, 살아도 산 게 아닌 죽음의 골짜기였으리라.

그러니 딸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 전형적인 납치 수법인지는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납치범이 아니라는 말들을 할 수 없는 현실에 천지에 그저 감사하며. 한동안 봉고를 모는,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이 동네 사람이면 한 번쯤은 지나가리라, 싶어 남편은 근처에 차를 두고 CCTV가 되기도 했고, 나도 함께 마을버스를 기다리곤 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말한 인상착의를 한 사람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 진작, 생활 연극으로 통해 아이들에게 많은 연습을 시키기도 했었다. 절대 낯선 이를 따라가지 마라, 고 신신당부하며. 하지만 큰애는 어떻게 마음을 봉쇄할 수 있었지만 둘째 아이는 초등학생이었고, 그 순수한 이면은 연습으로도 막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작정한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도움을 주려는 것과 도움을 바라는 척하며 관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괴기스럽다고 해야 할 범죄자들의 행각들. 그러니 아이들과 일상을 늘 함께 할 수 없는 가족들은 아이들을 키울 때 이런 일들에 매번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그때마다 억장이 무너지고 집에 있으면 가시방석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 뒤로도 간간이 들리는 아이들이나 약자들의 안타까운 납치, 폭행, 살해 소식. 언제나 타깃이 되는 사회계층들. 이런 일들이 지금도 같거나 다른 형태로도 자행되고 있어, 한 번씩 파렴치한 행위의 소식들은 나를 극도로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그들의 범죄는 도덕적 양심조차 전무한 인간성의 소멸이다. 그래서 그런 범죄가 정말 일어나지 않고 종결되기를 바라며.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 일상으로 약자란 말도 강자란 말도 없는 모두가 사회의 구성으로 밝게 살아가고, 아이들이 성장하길 기원하며. 한 번씩 딸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맞물려 지금도 어느 누구에게도 범죄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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