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관념
만물의 소생(蘇生)을 알리고 일컫기도 하는 생명의 탄생. 그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경이롭고 신비하다.
나는 첫째 아이가 나를 찾아올 때까지 기다림이 긴 탓에 둘째 아이도 인연이 되기 전, 기다려야 했고 생각보다 늦어짐에 불안했다. 그래서 둘째 아이 임신인 것을 알아챘을 때 너무나 감격했고, 천지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러나 둘째 임신 확인차 병원에 갔을 때 아이가 뱃속에서 성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때문에 수술을 권유받아야 했고, 나는 세상 무너지게 펑펑 울게 되었다. 그런데 진단을 받고 병원 나가는 길, 간호사분이 갑자기 내게 뛰어왔다. 그리고 대학병원에 한 번 더 가보라는 의견을 전해주었고, 그래서 고심 끝에 세밀한 검사를 위해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다. 그랬더니 정말 기적과 같이 먼저 본 병원이 오진이라는 결과를 받고, 천운이라 생각하며 기쁨에 또 펑펑 울었다. 왜냐면 그때의 간호사분이 재검사 차 대학병원을 권유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남편과 내가 대학병원에 갈 판단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수술을 권유한 병원에서 수술을 예약하고 할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둘째 아이와의 인연이 더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우린 손꼽아 만남을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그 시절쯤 해서 느슨해졌던 아들 선호 사상이 고개를 들고 성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둘째, 아니면 딸이 몇 있는 경우 아들을 바랐던 사람들이 어느 지정된 병원에 가서 성별을 알아내고, 낙태를 한다며 뉴스에 떠들썩하게 보도까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3개월이 지난 아이들로 거의 이목구비가 정립된 상태의 여아들을 낙태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땐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로 아들은 그 수에 포함되길 원하는 보수적 어르신들의 바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그런 결정을 어쩔 수 없이 하는 이들.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그들의 슬픈 결정에 무척 가슴 아팠고, 생명은 성별을 불문하고 찾아오면 소중한 것을 알았기에 모두 실로 개탄했다. 하지만 그 일들은 암암리에 더욱 행해졌고, 그 불법 유명 병원의 소문은 내 귀에도 들려왔다. 그건 첫째가 딸이었던 터라 마치 날 겨냥하는 듯 지인들의 수군거림 때문이었다. 그러나 들을 때마다 나는 소름이 돋았고. 그래서 그런 일련의 행위, 여아 낙태를 막는 방안으로 딸이 있어도 딸을 반긴다는 '딸 사랑' 앨범을 주는 병원을 선택해 나는 다녔다. 그리고 막달에 은연중 둘째가 딸이라는 표현이 병원서 슬쩍 오길래, 남편과 나는 언니와 친구처럼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런데 임신한 달이 차고, 아이를 분만했을 때 간호사분이 "밖에 있는 분, 남편분과 자녀 맞으시죠?" 하면서 "둘째는 아들이면 좋았을 텐데…" 하며 나를 동정한다는 듯이 불쑥 말을 건넸다. 그것도 막 애를 낳은 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았고, 그 병원이 둘째가 딸이어도 행복하다는 지침이 있는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전에 둘째 딸을 살려 준 간호사분의 좋은 이미지가 있었기에 좀 황망하기도 했다. 도대체 뜻 모를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동정의 말은 누구를 위한 언행이었을까 싶은. 그 말은 상처 줄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다분히 상처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둘째가 너무 기뻤던 탓에 그렇게 건넨 간호사의 말 자체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쁘게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몇 년 후 어느 날,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갈 때쯤 성비의 불균형이 오고 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남자아이들이 짝지가 없어 남는 경우가 있어 학교에서 난감해한다는 것이다. 그 일로 그때의 일과 말들이 소환되면서 나는 왠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고, 결국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이 글은 내 개인적 경험과 생각에서 적고 있기에 그 일들이 생명과 자연의 이치를 거슬렀기에, 그다음 세대에 이르러 성비의 불균형이 왔다는 개인적 소견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각자의 결정이 옳았고, 또 선택한 분들은 그 결과가 납득되고 받아들이고 살아가겠지만. 그리고 지금 시절에는 그때 일이 옛말이 되어 아들, 딸 상관없이 경이로운 잉태와 존재가치의 중요성. 그 존엄을 높이는 사회라 딱히 논할 일은 전혀 아니지만.
하지만 이런 경우뿐 아니라, 시대마다 이념과 사상이 사람들 의식의 전반을 흔들고, 후대에 원치 않는 결과로 남겨져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 이념과 사상은 개인이 판단을 하기에 앞서 결정을 모호하게 하기도 하며. 그러면 또 바뀌게 되는 세상의 이념을 마주하면 때론 부질없고 헛된 것임을 인지하게 되고. 그래서 나는 가끔 무슨 일을 결정할 때 시대도 착오가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융통적 사고를 하길 바란다. 내가 그때그때 선택하고 행한 일은 다음 세대 원치 않는 과제를 만든다는 생각도 들기에. 아마 그렇다 해도 결정이란, 하고 나면 매번 후회하는 일이 빈번할 것이고, 그래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 그것이 삶이고 도전이라 시대적 판단은 존중되어야만 한다. 다만 그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흐름 속,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옳은 가치는 잡고 살아가는 것. 그 또한 후세대를 위해 응원하는 삶의 한 가닥이지 않을까 하는, 그 개인적 느낌을 주관된 경험에서 피력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올리는 말씀: 경험담을 쓰면서 그저 쓴 글이 한 사람만이라도 스쳐 지나가고 읽힐 수만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 되는 글쓰기의 날들이었습니다. 때문에 배우고 성장이 되는 경험의 일상. 그 일상의 순간이 또 쓰이길 바라고, 그리고 작가님들의 소중한 경험과 창작의 글, 늘 소중히 읽고 응원하며 삶의 내적 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 사람의 경험과 소소한 느낌이 담긴 달팽이의 껍질을 읽어봐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허리 굽혀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응원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인생과 글의 철학을 성심껏 응원합니다. 늘 행복과 기쁨이 가득하시는 날이 되시길 염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