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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고 싶었다

생의 의지

by 양다경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도 막상 극한 상황에 빠지면 죽음을 절대 허투루 둘 수 없는, 살고 싶다는 것은 생각보다 강렬한 인간의 본능이었다.



중 3 쉬는 시간, 슬기는 촉촉한 눈빛으로 다가와 내게 말했다. "여름방학 때 외갓집에 가는데… 같이 놀러 갈래?" "나야 좋지, 어딘데?" 나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슬기를 바라보며 응대했다. "음, 여기선 좀 먼 데, 마을이 바닷가 근처라 수영도 할 수 있어!" 슬기는 자랑하듯 허리를 반듯하게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오~ 알았어, 알았어! 갈게!" 하며 교감의 답을 한 나는, 바닷가라는 기대감이 올라 입꼬리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나는 약속한 대로 슬기의 외갓집 마을로 길을 나섰다. 가는 중, 슬기의 말처럼 지역 내 먼 곳이긴 하나 낯선 곳을 가본다는 자체가 두근거려, 그 호기심의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다 도착하니 슬기의 외할머니가 기쁘게 맞이해 주셨고, 정말 집 밑으로 경치가 좋은 바닷가가 보여 설레었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버스에 내려 거기까지 가는 길이 한참 오르막길이라 힘들었고, 가는 내내 마을에서 풍겨오는 동물의 분뇨 냄새는 나의 표정을 굳게 했다. 거기다 닭 소리, 돼지의 웩웩대는 소리까지 더해지며. 언덕 위의 마을은 도심에 있는 마을이라 하기엔 가축을 많이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멋들어진 경치 속 바다가 있으니 슬기와 나는 도착해 짐을 풀고, 곧장 바다 근처로 뛰어갔다. 바다 근처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몇몇의 아이들도 힘차게 뛰어다녔다. 그런데 사람들을 자세히 보니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한, 장갑을 낀 모습이 간혹 보였는데, 보통 관광객이나 바닷가 사람들이라 보기에 어색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어색함도 잠시 나는 슬기와 놀면서 이래저래 장난을 쳤고, 곁에 있는 아저씨들도 친절하게 삶은 홍합을 건네주기도 하며, 나는 그 맛이 너무 기똥차서 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래서 만끽한 즐거움에 나는 바다에 들어가 개구리 수영을 했고, 수영의 행복감을 맛보니 더욱 호기로움이 가중되어 파도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바다수영을 즐기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바닷물에 깊게 들어간 것을 알게 되었다. 순식간이었고, 눈앞에 슬기는 어디로 간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 모습은 멀어져 자꾸 작게만 느껴졌다. 그러면 그 사이 파도의 푸른 물이 갑자기 험악한 모습으로 나를 위협하고. 발에 힘을 주어도 바닥에 닿지 않아 겹겹이 불안감이 엄습했다. 고요함에 더욱 적막한 환경, 파도 소리는 주변을 삼키고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나는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내젓는다. 소리도 지르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할라치면 물은 입안으로 가득 들어오고, 나는 이미 파도와 필사(必死)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움직여도 파도의 흐름에 몸을 뺄 도리가 없다. 나는 죽음에 처한 어두운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마치 목에 매인 매듭을 풀려고 하면 더욱 조여지는 두려움이 나를 옰아맸다. 그래도 그럴수록 살고자 하는 의지도 끊임없이 불타오른다. 하염없이 물을 내뱉고, 꺾이지 않는 파도와의 불굴의 싸움은 얼굴에 핏발이 설만큼 살아남을 오기를 품게 했다. 그러나, 또 오도 가도 못하는 현실을 직감하면, 오기마저 지쳐 나뒹굴고. 턱 위로 숨이 찰 때 즘, 고개를 들어 위로 눈을 돌리니 하늘은 빙글빙글 거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하늘 중심엔 동정심이 가득한 먹구름만 비를 뿌리려다 멈춘 것만 같았고. 핑 도는 어지러움. 그 어지러움에 나는 서서히 가라앉는다. 마지막인 듯 내려오는 눈꺼풀. 눈꺼풀은 궁핍하게 한쪽만을 남겨두고, 그리고 어렴풋이 주변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 순간, 마음에 정체된 암흑을 걷는 희망이 내게 야멸차게 다가왔다. 맞은편, 솟은 언덕이라 보기엔 조금 널찍한 작은 섬이 눈 안에 들어온 것이다. 언뜻 보기에 아주머니들이 그 위에서 해초를 손으로 훑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죽을 것 같아 그 아주머니들에게 이목을 끌고 싶은 나였지만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를 한 아주머니들은 일이 바쁜지 내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거기까지만, 하며 그 섬을 목표물로 삼고, 파도를 밀어내는 발길질을 더욱 거세게 해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앞으로 앞으로. 살겠다는 힘이 생긴 자아는 내 것임이 마땅하다. 나는 안간힘을 써 발버둥을 치며 그 섬과 가까이 가려 노력했다. 기력이 빠질 때면 높이 고개를 들고 공기를 내 안에 다시 불어넣으며. 살려달라 소리조차 버거운, 그때의 나는 죽음의 공포 앞에 섰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눈대중으로 본 섬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들지 않았고, 가다 지치기를 여러 번. 지칠 땐 잠시 파도를 당기듯 몰아, 놓칠 수 없는 생명의 끈을 잡는다. 그건 퉁퉁 부은 얼굴과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조차 돌아볼 겨를이 없는 삶의 확고한 의지였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모르나 몇 시간도 같았던 절박함.

​나는 아주머니들이 있는 섬 가까이 가, 솟은 바위 모퉁이, 잡을 것을 찾아 손을 뻗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돌 틈을 손으로 짚어내며 몸을 기울이니 기꺼이 디딜 곳을 밟게 했다. 아주머니들은 그제야 나의 인기척을 느끼고 급히 다가와 안절부절못하시며 말을 걸었다. "학생 여기가 어디라고 와, 여긴 배를 타야 오는 곳이야. 오는 줄도 몰랐네" 세 명의 아주머니들은 나를 다독이며 내 손을 잡아주고 끌어주었다. 나는 벌벌 떨며 입술이 새파란 채 넋이 나간 상태로 아주머니들과 작은 배를 기다렸다. 기다렸다 배를 타고 뭍으로 나오니 슬기가 사색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디 갔다 왔냐며 묻는 슬기에게 바다에 빠졌고, 그리고 나온 얘기를 정신없이 하며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다 나는 말하는 중 울컥 서러움이 폭발해 슬기한테 사정을 말한 뒤,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와 집으로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한센병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내가 간 곳은 그들의 마을이었다.



한 번씩 그때를 떠올리면 그 다급했던 아찔한 순간에 포기보다 어떡하든 살려고 한 어린 나를 떠올리게 된다. 낙심했더라면 나는 금방 파도의 소용돌이에 말려 지쳐 죽어갔을 것이다.

​죽음과 삶은 한 끗 차이로 그다지 멀지 않은 것인듯하며. 그곳 한센병 마을도 자신의 병과 맞서며 살고자 사람들이 머물고 있던 지역이라 내게 더 의미가 깊어졌다. 지금은 많이 발전한 그곳이 그때의 모습과 다르지만 시간이 있을 때 찾아가기도 하며. 그럴 때 한 번씩 높은 전망대에서 살고자 버틴 기억과 맞물린 파도를 바라보며, 희망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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