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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다단계

만병통치약

by 양다경

인생길을 걷다 보면 한 번씩 시련의 강한 바람에 부대낀다. 때론 그 바람에 밀려 돌부리에 털커덕 넘어지기도 하며. 그러면 그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달콤한 말에 주목하며. 누군가 도와줄 수 있다는 소리에 귀를 열게 된다. 말이 궤변이고 허무맹랑할지라도.



남편과 나는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너무 갖길 원했다. 그래서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임신은 자연스레 오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처음엔 사념(思念)이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2년여 넘는 시간, 아이를 원했던 우리에게 세 번의 유산이 있었고, 때문에 그 시간은 우울함으로 가득 메워져 더디게 흘러갔다. 그리고 잦은 유산이 있는 탓에 우린 둘 다 검사를 여러 번 했어야만 했고, 원인은 남편이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그 결과를 전해 듣자마자 걱정에 매일같이 내게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거냐? 무슨 이런 날벼락같은 소리냐" 하며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탄을 자아냈다. 나는 그런 어머님에게 스트레스 관리와 치료를 병행하면 괜찮아진다고도 했지만, 어머님은 아들 걱정에 잠을 설쳐댈 수밖에 없는 심정이 되어갔다. 어머님에게 있어서는 순간, 자신에게 불현듯 생겨난 난치병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심이 있던 어머님은 사방팔방 수소문을 했고, 어느 날 다급히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곤 "지금 일러줄 테니 말하는 곳에 가서 약을 타와라, 그 약은 불치병을 다 고친단다, 확실해" 하는 것이다. 나는 어머님 말씀이라 일단 질문은 접어 두었고 아이로 인한 상실감이 있던 터라 말씀하신 곳으로 버스를 타고 서둘러 갔다.




빌딩 숲. 새 건물을 과시하듯 풍기는 시멘트의 향내. 나는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낯선 한 층에 내려 사무실 같은 곳에 들어섰다. 들어서니 강의실 앞에 사람들은 꽤 붐볐고, 안내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마중했다. 나는 그들의 안내가 머쓱해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강의실 안에 성큼 들어갔고, 한 구석진 의자에 앉아있었다. 앉아있으면서도 대부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많아 젊은 편인 나는 이목이 집중되었고. 걸음을 내디뎌 오긴 했으나 얼굴이 벌게지고 뻘쭘했다.


​그때였다. '쨘쨘쨔짠, 쿵쿵 쿵 쿵쿵 챙챙챙' 음악과 함께 말끔히 양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했다.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지금 하는 말이 미친 소리 같을 수 있어요, 하지만 미친 소리 아닙니다. 모든 질병은 이 약 한방으로 해결됩니다! 신비의 명약! 잘 오신 거예요~!" 양복 입은 사람은 그렇게 말을 시작하고 곧잘 이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오" 하는 소리와 함께 양복 입은 사람을 초집중하며 화색을 띠었다.


곧이어 양복 입은 사람은 "여러분은 운 좋아요, 운 상당히 좋아! 선택받은 사람들이야~!" 그 사람의 반말과 비슷한 말은 얼마나 직설적인지 사람들에게 그대로 각인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나는 응답하는 사람들 사이로 맞장구를 쳐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뭔가 말이 내용은 없고 주입식이라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양복 입은 사람은 나같이 몇몇 설득이 안된 사람을 더 이해시키려는 듯 칠판에 뜻 모를 한자를 남발하기 시작하더니, 약이 신비한 명약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뜻은 자신이 발견한 약이 인류의 병을 못 고치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혼란도 있긴 했는데, 그 웅성거림을 잡으려는 듯 중간중간에 음악소리는 들려왔고, 설명서를 나눠 받기도 했다. 그런데 설명서에도 역시나 연구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없었고, 말하는 사람이 수련과 기를 통에 예지를 받아 그 예지로 통해 귀한 약재를 만들었다는. 지금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말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왕 온 것이니 설명은 구구절절 다 듣고는 있었다. 그러자 양복 입은 사람의 혼을 쏙 빼는 강의가 끝나고,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은 나갈 때 약을 사는 것이었는데, 약은 마치 낙엽을 부순 모양새처럼 생긴 잎 같았다. 그 잎과 같은 약을 물에 타서 먹으면 된다는데 나는 그런 일련의 과정에도 의구심이 계속되어 사람들 표정만 관찰 중이었다.


​거기다 그 와중에 먼저 번 안내를 했던 사람들은 이 내용을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연결해서 데리고 오라고 했고, 그러면 돈을 챙길 수 있다며 이중, 삼중으로 주의를 끌었다. 그렇게 다단계로 모인 회원들이 뉴질랜드, 필리핀을 갔다 오기도 한다며. 요점은 병은 낫고 돈을 벌며 여유 있는 삶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려한 삶의 증거를 보여준다며 회원 단체 사진들이 구성된 또 다른 강의실에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내내 설득시켰다. 하지만 나는 또 여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에 세뇌가 잘되지 않아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고, 어머님 말씀대로 약은 여차여차 해서 사 왔지만 선전용 책자는 오는 길에 버려버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머님의 당부를 거역하기가 그렇기에 집에 와서 남편에게 그 낙엽 같은 것을 2리터 물에 타서 먹였다. 남편은 주는 대로 약을 막 받아먹더니 장트러블이 일어나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 신음을 했다. 나는 남편이 신음하는 사이, 그 고충을 보며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만 했고.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서까지도 "으윽, 나 죽겠다" 하며 화장실을 들락날락 시전 하더니 겨우 출근을 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가지 않았고, 어머님을 설득했는데, 어머님도 그걸 먹고 남편이 아프다는 말에 더 이상 강요는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후, 그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쪽으로 택하고, 더 이상의 유혹의 선은 넘지 않았다.



최근에도 티브이를 보면 아프고 지친, 심신이 취약할 때 사람을 이용하는 비슷한 행각들이 많다. 심리의 패닉 상황을 겨냥해 어떻게 하면 되더라는 소문을 추종하게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건 연약한 사람들을 돈벌이로 생각하던가, 자신을 신적인 대상으로 보게끔 하는 수법들. 치료 약이라는 희망의 사슬 연결고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나의 경우는 체험한 것에 불과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빠져들어 맹신하기도 하며 바닥을 드러내도 실체를 추종한다. 그때서는 병을 위해서인지 아님 어떤 위로에 도취되어 이성이 마비가 된 건지 상황이 뒤죽박죽 되고. 그래서 더 비참한 결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상황을 드러낸다. 물론 진심을 다해 상대에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가끔 인간이 인간의 약점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이 되지 않는 불멸의 약과 허황된 논리의 믿음은 아픈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에 가슴이 아린다. 지금 현재의 나도 원인 모를 통증이 있어 한 번씩 '이러이러하면 낫더라'는 글에 눈을 못 떼니. 그래도 그럴 때마다 만병통치약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잡고. 또 속고 속이는 세상 속 방심의 끈을 놓지 않으며. 되도록 검증된 쪽으로 방향을 돌려, 그때의 교훈으로 나를 반추하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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