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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성추행의 슬픈 기억

by 양다경

학교 가는 길. 기막힌 날씨다. 하늘은 드높고, 마음은 우렁차다. 공기의 스산함은 나를 일깨우고, 가방의 무게도 깃털같이 가볍다. 나는 너풀 너풀 부는 바람에 옷이 하늘거리며. 골목을 돌고 돌아 학교 갈 생각으로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항상 집은 몇 개의 골목으로 들어간 탓에 나올 때도 몇 개의 골목을 굽어 나와야 했다. 그런데 화창해도 너무 화창한 날, 새들도 반기는 밝은 아침, 골목을 막 빠져나오는 그때였다. 맞은편에 얼굴을 숙이고, 인상이 가려진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다. 나는 의례 낯선 이가 스쳐 지나갈 때면 약간의 움찔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기척에 놀랐을 뿐 그 어떤 일이 발생할 거라는 생각은 한치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평범하게 학교를 가기 위해 사람을 지나치는 길목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걸어가다 갑자기 바짝 다가서더니 손을 내 쪽으로 쭈욱 뻗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앗" 하는 사이 내 가슴을 힘껏 움켜쥐며 비틀고 가버린 것이다. 나는 치명적인 고통에 소름까지 더해져 순식간에 다리가 구부려졌다. 그리고 주저앉아 바로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속력은 얼마나 재빨랐는지 지나친 흔적조차 없을 정도였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 성장기 때라 지나간 폭력에 가슴의 통증이 상당해서 호흡을 잠깐 멈췄다. 그러다 움츠린 몸을 겨우 풀고 숨을 내뿜으며, 아픔에 창피함까지 더해져 얼굴이 샛노래졌다.


그리고 몇 분 후 얼굴을 드니 아침에 화창했던 하늘모두 회색빛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엉엉' 울고 싶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말하고도 싶었다. 그런데 학교 갈 시간은 촉박했고, 머뭇대다 그냥 그대로 아픈 가슴을 쓸어대며 일어섰다. 그리고 느닷없는 폭행에 억울한 마음이 되어 학교에 도착했다. 나는 교실에 도착해 앉자마자, 책상에 엎드리고 소리 죽여 울먹였다. 울음은 성인에 대한 배신감도 섞여있었다. 반 친한 친구는 교실 들어오는 입구부터 나의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자신의 자리에 앉기도 전, 내 어깨를 들쳐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나는 학교 오는 길에 당한 성추행 사실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친구도 나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한숨소리를 크게 내며 기억의 모퉁이, 한 부분을 끄집어냈다. 친구의 말은 국민학교 운동회 날이었다고 한다. 운동회날 모두가 운동장으로 시선이 몰리고 왁자지껄하던 그때, 응원을 하던 친구는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운동장 뒤쪽 화장실로 들어갔고 문 앞에 서성이는데, 화장실 맨 끝에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더니 한 남자가 자신을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고 했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몸을 더듬는 추행을 하더니, 학생들이 오는 소리에 밀치고 도망갔다고 했다. 그때 친구가 5학년쯤이라고 했다. 그 짓을 한 사람은 중년의 아저씨였다고 했는데, 학교에 말해 조사가 들어갔긴 했지만 조사 결과는 어떤지도 모르고 끝나버렸다고 했다. 그때 당시는 성추행에 대해 지금보다 관대함이 있었던 터라 그냥 그날의 일을 원망하며 괴로운 추억으로만 자리 잡았다고 했다. 그 말에 주변에 아이들도 하나둘씩 성추행이나 관련 일들을 넋두리처럼 쏟아놓았다. 어느 친구는 '굴다리'라는 곳에서의 일인데, 어떤 아저씨가 바지에 지퍼를 내리고 여학생이 올 때마다 자신의 신체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고 했다. 바바리맨 하고도 흡사하기도 한데, 그 남자가 남자들이 지나갈 때는 그냥 서 있고, 여학생들만 지나가면 지퍼를 내리고 성기를 노출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당시 어떤 분이 신고를 해서 잡긴 했는데, 잡고 보니 그 사람은 멀쩡히 가정이 있고 어엿한 가장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는 차 안에서 어떤 노인이 엉덩이를 계속 만지는 추행이 있었는데 자신이 "그러지 마세요!" 하고 다그치고 했지만, 멈추지 않았고, 그 주위로 딱히 도와주는 어른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성에 관련 나쁜 경험이나 기억을 가진 애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에 나는 놀랐다. 그 사람들 특징은 성장기 소녀들이나 대체로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 시절 관련 법이 미숙해서 속수무책으로 행해지니. 경험한 이들의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모님께 하소연한다 해도 그냥 하나의 재수 없는 일이라는 듯 받아들이곤 했다. 물론 손발이 닳도록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경찰분들이 계셨겠지만, 그 당시 학교 화장실까지 변태가 들어와 대놓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겪어본 사람들은 당한 일을 얘기할라치면 또다시 경험할까, 하는 트라우마에 치를 떨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경우 이외도 학교 시절 나쁜 기억이 있는 분들이 제법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며. 지금도 중년이 된 내가 딸아이도 지하철에서 웬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쥐어 틀고 가더라고 하니. 시대가 변해도 상대를 기만한 성추행은 지워지지 않고 존재한다.

​비단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해당되기에 굳이 성별과 나이를 논하자는 의도는 전혀 아니므로.

단지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을 일컫는 오늘날까지도 그 시절, 타인을 얕잡은 성추행이 이어지니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 나약함을 토대로 하는 범죄는, 또 다른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에. 그리고 당한 이들의 기억은 나이가 들어도 지워지지 않는 모멸의 한 부분이기에. 물론 지금은 전반적 사회 인식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비되고 있지만, 아직도 무분별하고 불미스러운 일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연명되고 있다. 모든 걸 떠나서 그런 범죄를 하는 그들도 남성, 여성으로 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기에. 그런 허락받지 않는 신체 접촉은 타인을 유린하는 오만한 생각에서 비롯된 듯도 하다. 때문에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인권 유린 문제라는 개인적 소견으로.

그래서 요즘 사회 구성원으로 아이들이 태어나길 바라고,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만큼, 건전한 환경에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성추행을 포함, 성범죄가 꼭 뿌리 뽑혀 근절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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