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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심리

숫자가 나를 슬프게 했다

by 양다경

숫자는 날마다 공기처럼 움직였다. 매일 사람들과 살아가고 곁에서 숨 쉬며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냉정해서 섭섭했고, 때론 정확하고 솔직해서 두려웠다. 그리고 어느 날 숫자가 주는 위로로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으니. 그러다 숫자에 기대감을 가지면 아주 매몰차게 쓴 상처를 받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학교 공부에선 상, 중, 하가 존재했고, 나는 그중에서도 중간 좌의 학생으로 머물고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노력하면 상위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주를 잇는 탓에 뭔가 노력을 다하지 않을 거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있던 중간 좌였다. 왜냐면 나는 그나마 중간 좌에서 밀리지 않는 순위를 갖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노력하고 있었기에. 어중간이라 여기는 시각이 있다 하더라도 분명 좋아하는 과목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건 짝지, 정숙도 그러했으니 그런 연유에서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을 가졌다. 정숙은 필수과목에서 영어만 잘하고 나머진 어영부영했고, 나는 수학만 잘하고 나머진 성적이 부진했다. 그래서 전 과목을 다 잘하지 못하는 동질감을 같이 나누며 나름 중2병의 고충을 함께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 돌이켜봐도 참으로 낭만이 있던 정숙이었다. 정숙은 영어를 아주 잘했던 이유가 있었다. 영어권 팝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듀란듀란'이라는 그룹을 좋아해 그 노래를 섭렵했으면 그 멤버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메인보컬인 사람을 신처럼 추앙하고 있었기에 팝송을 날마다 부르니 영어가 곧잘 느는 것, 나는 영어에 관심이 1도 없던 탓에 정숙이 팝송을 부르고 영어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대단해 보이고 멋지게도 보였다. 그래서 가끔은 정숙에게 영어의 조언을 묻기도 하며. 그러면 정숙은 내게 수학의 조언을 묻고, 나름 각자 영역의 범위에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다 중2를 정리하는 마지막 기말고사는 치러졌고, 나온 점수는 순차별로 나누어져 순위가 결정되어 꼬리 성적표가 배부되는 날이었다. 상위권 애들은 별도의 지각변동 없이 결과를 맞이하고, 나머지는 한 등수라도 오르기 바라는 염원이 온 교실을 울릴 정도였다. 선생님은 꼬리표 성적 배부 전, 성적표 정리 차 짝지인 정숙과 평소 또 다른 중간 좌 순위였던 지혜를 불러 교무실로 따라오게 했다. 정숙과 지혜는 궁금했던 성적을 미리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상기되어 선생님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얼마 뒤 다소 지친 모습의 정숙과 지혜는 선생님을 도와 정리한 꼬리 성적표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성적표 뭉치는 한 반에 '63'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꽤 두툼했다. 우린 성적 뭉치가 든 긴 봉투 위에 이름 있는 곳만 확인하고, 자신의 성적을 빼는 식이라 좌측부터 빠르게 옆으로 뒤로 넘어갔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어서 내 성적표를 뽑았고, 보는데 깔끔해야 되는 성적 순위에 볼펜 자국이 있는 것이다. 성적 순위가 23이면 그 위로 28이라는 숫자를 덮어 놓은 것처럼 그 자국이 어색했다. 나는 의아해했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이 잘못 출력되어서 고쳤겠거니, 하며 다시 쓴 것이 맞을 것 같아 28등을 했구나, 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는데, 정숙이와 같이 교무실로 간 지혜가 다가와서 "너 이번에 23등 했더라" 했다. 의례 중간 좌들끼리 궁금해 물어보는 식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아니야, 28이야"라고 했더니 "뭐? 내가 봤어! 너 23이야! 정숙이도 봤는걸!"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지혜를 바라보고 정숙이도 바라봤는데, 옆에 있던 정숙은 아무 말도 없이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는 지혜, 정숙의 모습도 그렇고 아무래도 볼펜으로 덧칠한 성적표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그 볼펜 자국의 의구심을 풀고자 성적을 확실히 여쭙게 되었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은 성적표를 보시더니 자신의 일지를 펼쳐 확인하고, 단박에 누가 손을 댄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성적표를 정리시킨 정숙이와 지혜를 부르고 추궁 끝에 볼펜으로 성적을 고친 친구가 짝지인 정숙인 것을 알아냈다. 선생님은 몹시 꾸짖고 했으나 나는 한참 동안 어이가 없어했다. 정숙이가 절친인데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납득이 전혀 안 갔으니. 그것도 1, 2등 상위 좌도 아닌 중간 좌 그 등수가 뭐라고 바꿔놓은 것일까, 하며. 알고 보니 정숙의 성적은 27이었으니 나를 자기 뒤로 둔 목적인 듯했다. 아마도 경쟁심리로 한 것으로 생각을 했으나 묘한 감정이 흘렀다. 그렇게 고쳐두면 마음이 편했을까, 하는. 나는 짝지인 정숙이가 고만고만했던 성적인 나와 경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 사실에 무연(憮然)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말을 안 했고, 또 말 안 한 사이 짝지가 바뀌어 바쁜 생활 탓에 빨리 덮어버렸지만 그 숫자가 뭐길래 우린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싶었다. 나는 아마도 그때 마음을 다친 것이 분명했고, 그래서 한동안 경쟁에서 오는 숫자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마음을 흔드는 경쟁의 숫자. 숫자는 많을수록 좋을 때도 있고 적을수록 좋을 때도 있는, 자신을 확연히 가리키는 숫자들. 특히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숫자는 존재 가치에 확신을 더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 그러니 숫자를 보면 타인에서 살짝 밀려나는 것을 눈치채게 되고, 어떨 땐 숫자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나를 세상의 조연으로 줄을 세운다. 물론 고군분투해서 타인을 앞서는 사람들의 성취감은 그 실력을 증명하는 수단도 되기에 마땅히 존경스러움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하나의 기호 같기도 한 순위의 숫자가 자격지심과 자책으로까지 결부 짓고 끌려다니게 만드니. 그래서 때로는 숫자에 밀려나더라도 적어도 숫자에 나 자신을 계급 짓지 말자고 스스로 위로한다. 하지만 이런 나도 간혹 순위 매김의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는 이중적 모습을 취하기도 해서 딱히 말하기에 이유가 모자란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순위의 숫자가 인간 각자의 개성을 일반화하고 깎아내릴 순 없으니. 그래서 타인을 경쟁에 놓고 숫자의 형식에 연연하지 않는 내가 되길. 사회 구성의 작은 몫이라도 해내는 나 자신을 믿고, 소중한 인격체임을 알아가길. 그렇게 바라는 마음으로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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