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로 이사 온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라면 아이의 홈스쿨링 계획에 답을 거의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환경과 조금 거리를 두고, 불편함을 감내하기로 마음먹으니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단순함이 주는 편안함이 찾아왔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믿는 선택이 나에게도 반드시 정답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리의 삶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왜 홈스쿨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사람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의 의견을 먼저 내세웠다. 남편은 확신을 가지고 강하게 홈스쿨링을 주장해왔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고민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대답이 모호하다 싶으면, 돌아오는 건 늘 비슷한 조언이었다. 아이는 당연히 학교에 가야 사회성을 기르고 친구도 만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길을 정하면 안 된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야 하지 않냐는 말들. 타인의 입을 통해 내가 이미 고민하던 것들을 다시 듣게 되면, 괜한 죄책감과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건 정말 스스로의 선택일까? 아니면 부모와 사회가 이미 정해둔 길을 따라가는 걸까? 나는 정작 ‘왜 학교에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깊이 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그 길을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나조차도 엄격한 시선을 보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의무교육이니까, 남들도 다 다니니까, 또래를 만나야 하니까’ 하는 이유들이 과연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아이는 이제 곧 열한 살이 된다. 앞으로 3년 뒤면 입시라는 큰 파도 앞에 서게 된다. 물론 학교에 다니면서도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성적이 아니라 자기 안에 오래 머무는 힘이다. 시골로 이사 온 것도 남의 속도에 맞추기보다 우리의 걸음을 찾기 위해서였다. 시험과 수행평가로 채워지기엔, 아이가 지닌 맑고 여린 시간이 아직은 너무 귀하다.
이런 말들이 어쩌면 그럴듯한 포장일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의 지난 경험이 아이의 교육 방향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루지 못한 공부를 자녀에게 필사적으로 요구하는 부모도 있고, 억압의 기억 때문에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부모도 있다. 우리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사실 학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건 우리 부부의 소망이었다. 혹시 그 바람을 아이에게 대신 이루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 선택 앞에서 더 오래 머뭇거리게 된다.
홈스쿨링은 아직 실험 중이다.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흔들린다. 하지만 이 실험을 가능하게 한 건 시골에서의 생활이다. 도시의 규칙적인 시간표와 경쟁 대신, 시골의 단순함과 여유가 우리에게 선택의 틈을 만들어주었다. 틀에 맞추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다.
계절마다 부지런히 다른 작물을 가꾸는 이웃 어르신의 텃밭을 구경하는 일도, 소유하지 않아도 길고양이와 가족처럼 지낼 수 있다는 걸 배우는 시간도 모두 배움의 일부가 된다. 불안은 여전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 아이와 함께 조금씩 길을 내고 있다는 확신도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