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시간표를 버리고, 우리만의 시간표를 짓다

by 나경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들의 대화는 다른 집 아이들이 어떤 학원에 다니는 지로 모아졌다. 그 속에서 나는 “저희 아이는 운동 하나만 다녀요” 라고 답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괴리감을 느꼈다. 게다가 살던 동네에서 15분 더 들어간 시골 마을로 이사까지 오자, 엄마들의 시선은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기도 했다. 한창 학원에 다닐 시기가 되면, 아이를 데려다주느라 운전기사가 될 내 처지를 걱정하는 말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먼저 걱정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괜히 복잡해진다.



하지만 아이와 나에게 학원이 자연스레 먼 선택지가 된 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나는 흔히 마음이 팔랑거려 금세 학원에 등록하고 아이를 재촉하는 엄마가 되기 쉬운 성향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학교 친구들이 학원에서 체계적으로 선행학습까지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남들과 다르지 않게 학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스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이 길을 계속 가보고 싶다. 아이가 멀리 내다보고 자기만의 배움의 방식을 터득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어쩌면 그 기대가 다른 부모들보다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이에게 맞는 공부법과, 긴 여정을 함께 걸어갈 스승님을 찾아가는 탐험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날은 문제집으로 기초를 다지고, 또 어떤 날은 온라인 수업을 통해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다. 문제집을 펼치기도 전에 아랫입술이 저절로 삐죽 올라가고, 졸린 눈으로 연필을 건성건성 잡는 아이를 애써 못 본 척한다. 그러다 마지못해 시작한 풀이가 몇 문제쯤 지나면 어느새 집중으로 바뀐다. 공부를 마치고 연필을 내려놓으며 환하게 짓는 그 미소. 그 짧은 순간이 성적표의 숫자보다 훨씬 값지다는 걸, 나는 매번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바로 ‘자기주도 학습’이다. 미디어와 책에서 끊임없이 들려온 말이라 나도 한때 기대를 걸고 집 안 곳곳에 문제집과 책을 말없이 두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처음부터 자기주도가 가능한 아이는 드물었고, 내 아이는 안내와 지지가 먼저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혼자서는 공부 습관을 만들지 못했던 아이였다. 습관을 만들고 반복하는 일이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데, 나는 왜 아이에겐 자연스레 해내길 바랐을까. 자기주도 학습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성숙이 아니라, 부모의 동행과 작은 습관이 시간이 쌓이며 만들어가는 길임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첫 단추를 같이 끼워주자, 아이는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끝내고 “엄마, 나 다 끝냈어! 게임 조금만 해도 돼지?”라며 당당하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 모습이 내겐 작은 자기주도의 시작처럼 보였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에 자리에 앉아보는 것, 문제를 다 풀지 못하더라도 연필을 내려놓지 않는 경험, 틀린 문제를 다시 시도해보는 끈기 같은 작고 단순한 축적이었다.



도시의 촘촘한 시간표에서는 미처 만들 수 없던 틈이, 시골의 단순한 일상 속에서는 가능해졌다. 그 틈에서 우리는 공부의 방식을 실험하고, 삶의 속도를 조율해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듯, 우리 배움도 이 길 위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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