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몰라도 돼.”
아이에게 이 말을 이렇게 빨리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 한마디에, 나는 부모가 아닌 낯선 구경꾼이 되어 있었다.
유치원 시절만 해도, 아이는 매일 나를 붙잡고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전해주곤 했다. 친구들의 성향은 물론, 남의 집 주말 계획까지 알게 될 정도였다.
등교 준비를 마친 아이의 가방이 유난히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손잡이를 들어보니 평소보다 무게가 달랐다. 뭐가 들었냐 묻자, 아이는 책을 꺼내며 속삭였다. “친구랑 몰래 볼 거야. 걔가 제일 좋아하는 시리즈 거든.” 백미러 너머로 짧게 솟은 머리카락이 들썩였다. 학교가 기다려진다는 설렘이 그대로 전해졌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간질거렸다.
“근데 언제 그 책 같이 보기로 했어? 쉬는 시간?”
짧은 정적 뒤, 아이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엄마는 몰라도 돼.”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언젠가 듣게 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사춘기 시절 내가 부모님께 가장 많이 던졌던 말이기도 했다.
내가 선을 넘은 걸까? 혹은 아이의 비밀을 들추려는 질문처럼 들렸던 걸까?
그 짧은 대답이, 아이의 마음에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문이 생겼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 말투가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한마디 잘못 던진 말에 아이가 불편해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신이 날 때면, 나도 모르게 꼭 참아야 할 질문을 던지고 만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통제’가 아니라 ‘존중’이라는 것을. 하지만 매순간 실천하기란 어렵다. 버릇없어 보이는 말에 감정이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지른 뒤, 또 후회한다. 이래서는 홈스쿨링은커녕, 차라리 기숙학교에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날도 많다.
끝없는 고민만 깊어지던 나날들. 결국 아이가 고학년을 앞둔 지금, 나는 훈육 코칭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이 내 방식을 바꿔줄지, 아니면 또 좌절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이와의 관계를 바꾸고 싶은 마음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코칭방에는 엄마 열두 명 남짓이 모였다. 나는 그중 가장 큰 아이를 둔 엄마였다. 밥을 거부하는 아이, 양치를 싫어하는 아이, 기저귀 떼기를 거부하는 아이…. 각자의 고민은 달랐지만, 절실함이 묻어났다. 나 역시 그 시기를 어떻게 버텼는지 모를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런 코칭을 받았다면 좀 더 수월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며 마주하는 고민은 여전히 새로운 숙제로 찾아온다. 육아에는 끝이 없고, 결국 부모도 함께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또 한 번 배우는 자리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