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 날, 나는 노트와 펜을 챙겨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이를 조금 더 ‘이해시키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비장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첫마디는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훈육은 아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부모가 스스로를 훈련시키는 일이에요.”
순간, 가슴이 콕 찔렸다. 나는 그동안 아이를 바꾸려 애쓴 적이 없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이의 감정보다 내 통제 욕구가 앞섰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훈육은 늘 실패로 끝났던 것이다.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선생님께서 ‘아이의 욕구 읽어주기’에 대해 설명하셨다.
“엄마는 네가 원하는 걸 알고 있어.”
“엄마도 네가 원하는 대로 되길 바라고 있어.”
처음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 말이 마치 아이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겠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엄마아빠는 네가 하루 종일 게임하고 싶다는 걸 알아. 엄마아빠도 네가 원하는 대로 되길 바라.’
정말 이렇게 말하라는 걸까?
내 안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올라왔다. 그때 선생님께서 덧붙이셨다.
“이건 동의가 아니라 공감이에요.
아이가 ‘이해 받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순간, 행동이 달라집니다.”
아이와 대화를 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 팽팽하게 줄을 반대 방향으로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는 걸 말해줄 필요가 있어요.”
그제야 나는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10년의 육아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며 가슴 깊은 곳이 잔잔히 흔들렸다.
숟가락을 들고 “한 입만 더!”를 외치던 식탁, 장난감을 치우라며 윽박지르던 거실, “그건 울 일이 아니야”라며 아이의 감정을 덮어버리던 내 목소리.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나는 늘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배워야 했던 건 나였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생각했던 대화법이, 결국 내게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그날 밤, 아이가 장난을 치며 할 일을 미뤘다. 예전 같으면 “빨리 해!” 하고 목소리가 먼저 나갔겠지만, 나는 간신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천천히 되뇌었다.
‘지금은 훈육이 아니라, 훈련의 시간이다.’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대로,
아이의 욕구를 읽어주고 아이의 입장으로 메시지를 바꿔 전하며, 생각할 시간을 주는 연습을 시작했다.
3주 동안 그 과정을 반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었다. 한 문장, 한 표정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 몰랐다. 때로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내 안의 참을성이 바닥을 드러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피하고 덮어버리던 내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부끄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바꾸려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나 자신이 바뀌는 데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의 이 훈련이, 어쩌면 아이와 내가 함께 새로운 배움의 길을 건너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