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집엔 작은 실험이 하나 있다. 학원 대신, 식탁 위 시간표 한 장으로 하루를 운영하는 일이다. 화려한 계획도, 특별한 목표도 없다. 그저 하루를 어떻게 ‘조율하며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배우는 중이다.
친구들이 학원으로 향하는 시간, 아이는 거실 테이블 의자에 앉는다. 노트북과 문제집이 놓인 자리 앞에는 우리 집의 ‘하루 공부 시간표’가 붙어 있다. 공부 시간보다 게임 시간이 더 많지만, 그 종이 한 장을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오늘은 수월하게 넘어가나 싶다가도, 어느 날은 저녁을 준비하는 나보다 아이의 집중이 먼저 흐트러진다. 시간표대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냉장고 속 재료로 짠 식단표도 내 하루 기분에 따라 뒤죽박죽인데, 아이가 계획대로 척척 해내길 바라는 건 어쩌면 내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나의 관심은 ‘얼마나 공부할까’가 아니라 ‘우리가 세운 약속을 어떻게 일상의 리듬으로 만들까’이다. 아이와 함께 계획표를 짜지만, 그 약속을 지켜내는 일은 또 다른 훈련이다. 그동안 나는 약속이 어겨지거나 흐트러질 때만 대화를 시도했다. 그 대화는 대부분 잔소리나 지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훈육 코칭 수업을 들은 뒤로, 나는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긍정 훈육’을 연습하고 있다.
무너진 약속을 되짚기보다, 지켜낸 약속을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아이에게 왜 이 일상이 중요한지 천천히 말해본다. 그 말이 아이에게 닿기도 전에 먼저 나를 다독이는 주문이 된다.
아이는 오늘도 약속한 1시간 게임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끝나는 그 순간, 진짜 승부가 시작된다. 2분 전에 한 판이 끝났고, 지금이 마무리할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판을 눌렀다. 마치 중요한 미션이 남은 사람처럼, 손가락을 마우스 위에 얹은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제 끌 시간이지?”
“응, 근데 잠깐만… 이 판만 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눈치 작전이 시작된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지만, 내 눈썹은 이미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언제 끝나는데?”
“그게… 이 판에서 죽으면 끝나…”
“안 죽게 열심히 하면 20분도 지나잖아?”
“아니야.”
결국 10분이 지나고 나서야 아이는 마지못해 컴퓨터를 끈다. 그 순간 나는 패배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오늘도 큰 싸움 없이 끝냈다. 이 정도면 선방이지.’
매일 반복되는 이런 실랑이 속에서, 아이가 규칙을 지키게 하는 일보다 그 규칙의 의미를 함께 이해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완벽한 훈육보다 소중한 건, 결국 오늘의 평화다.
요즘 우리는 이 식탁 위 시간표를 홈스쿨링을 향한 첫 번째 실험장처럼 사용하고 있다. 하루를 계획하고, 흐트러지면 다시 세우고, 작은 약속을 지켜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아이는 자기 리듬을 찾아가고, 나도 조급함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며 우리만의 배움의 시간표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