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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멜리에 Jan 10. 2018

#1. 한담공원, 찰나의 순간에 대하여

[2017 낭만제주] 애월의 일몰에 온 마음을 빼앗기다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일몰을 안주삼아 남편과 함께 맥주를 마시던 장면을 동경했다.
'나도 저기에 가면 맥주 한 캔과 가을바람에 행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여행의 시작은 무조건 한담공원의 일몰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담공원은 제주 서쪽 애월 한림마을에서 곽지해수욕장까지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약 1.2km의 산책로인데, 현무암질의 기암괴석과 에메랄드 빛 바다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또한 서쪽만의 특권인 일몰이 장관이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일몰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랴부랴 한담공원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창문을 내리니 시원하지만 아직은 따뜻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늦여름의 공기와, 도로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파도에 그제야 내가 제주에 와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동시에 바람결에 내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인 한담공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검은 현무암질 절벽 아래로 하늘빛의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고, 기분 좋은 시원한 바닷바람이 내 감정을 온전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절벽 아래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해안산책로가 나오는데,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바닷가 주위를 걷기 시작했다. 서서히 날이 어두워짐을 느꼈고, 우리는 산책로 가장자리에 높이 솟아있는 바위를 타고 올라가 꼭대기에 걸쳐 앉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그사이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생각, 세상에 힘들어하지 않고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다는 소박한 행복에 감사하다는 생각.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 서서히 원색의 붉은빛은 파도 위에 드리우기 시작하고, 바다는 시원한 가을바람과 만나 더욱더 검은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고기잡이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 둘 전등을 밝히기 시작했다. 바다의 아름다움과 현무암의 장엄함이 한 데 져 한림공원은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되어갔다. 자연의 경로운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겸손해졌고, 더 이상 어떠한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설레던 여행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몰이 지기 전 한담공원의 모습


일몰이 지기 시작하는 순간


붉은 일몰과 기다렸다는 듯이 불을 밝히는 고깃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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