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푸르에서 출발해 푸쉬카르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해가 다 진 뒤였다.
자이살메르 파라다이스 사장님이 추천해준 하레라마 게스트하우스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어두침침하고 눅눅했으며, 화장실 변기는 어딘가 깊은 심연으로 이어지는 듯 끝없이 어두웠다.
방 역시 천장에서부터 어둠이 쏟아져 내려 점점 방을 잠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들 지쳐 하루만 그냥 여기서 자자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여기서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 잠들었다간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 가 내일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이 푸쉬카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인도의 치안이 좋지 않은 터라 해가 지면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편이었지만,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두려움을 제치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작은 동네라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밤이어서 그런지 괜찮은 숙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4,50분을 헤매다 겨우 호텔 비너스라는 마당이 있는 꽤 괜찮은 숙소를 발견했다.
나는 숙소에 일행들을 데리러 가기로 하고, 같이 알아본 일행은 다른 숙소를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그건 정말 내가 아직도 나를 모르는 큰 실수였다.
나는 지도를 볼 때 입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인지하는 전형적인 길치이다.
게다가 초행길에 밤이었다. 심각한 길치인 나는 사방이 똑같이 낮은 집들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은 모르면 빨리 길을 묻는다는 것이다.
다만 인도인들은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인도인들에게 길을 물었을 때, 모른다고 하면 실례인 문화가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길을 묻는 인도인들마다 그냥 되는대로 아무 길이나 알려주었다.
나는 그 작은 동네를 사정없이 헤매다 인도 여행 중에 한 번은 마주친다는 미친개와 마주하게 되었다.
인도의 떠돌이 개를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의 모든 개는 예쁘다고 생각하고 산 나였지만,
인도의 떠돌이 개들만은 예외이다.
인도의 개들은 전부 피부병을 달고 있으며,
하나같이 분노에 차서 언제든지 물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었다.
오죽하면 여행 전에 말라리아 약 다음으로 광견병 주사를 맞을지 고민을 하게 되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특히나 극대노해 계신 인도의 떠돌이 개와 마주했다.
도대체 누가 이토록 개님의 심기를 건드려놓은 것인가.
개님은 혀를 길게 한쪽으로 빼물고, 미친 듯이 짖어대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물리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개님이 제발 분노를 푸시기를 빌며, 울며 달렸다.
다행히 그렇게 보이지 않던 하레라마 게스트하우스가 죽기 일보직전이 되니 저 멀리 보였다.
나를 어둠으로 이끌어 심연의 끝으로 잡아 끌 것 같은 하레라마가 이제는
나를 살리는 한줄기 빛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니, 일행들을 데리고 숙소를 옮길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일행들과 오늘 저녁은 그냥 여기서 묵기로 하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방에 딸린 작은 발코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전이 된 채로 의자 깊숙이 몸을 맡긴 채 앉아있는데,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한다.
전깃줄이 전부 외부로 노출되어있는 인도에선, 비가 오면 바로 정전이다.
역시나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전구는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얼마 만에 겪는 정전인지.
내가 국민학생이던 시절. 우리 가족이 살던 5층짜리 작은 아파트는 종종 정전이 됐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부엌엔 반투명하게 하얗고 긴 양초 다스가 항상 상비되어있었다.
우리 집도 역시 그 희뿌연 양초를 가지고 있었는데, 정전이 되면 그 양초에 불을 붙일 생각에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정전이 된 순간부터 두근두근하며, 엄마가 서랍에서 양초를 꺼내오라는 말을 기다리는 그 짧은 몇 초가, 막상 초에 불을 붙였을 때보다 더 설렜었었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인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그 설렘을 다시 한번 느꼈다.
비슷한 나이 때라 그런 걸까. 나의 일행들도 다들 그때의 그 국민학생들처럼 신이 나서
철없는 십 대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작은 양초에 불이 붙고, 그렇게 지친 우리의 몸에도 작은 힘이 돌았다.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신나게 정전됐었던 옛 시절을 얘기하며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었다.
방으로 돌아와 나랑 같은 방을 쓰는 동갑내기 여자 친구와 한침대에 누워
우리는 못내 아쉬웠던 수다를 한참이나 나누며 얘기가 깊어질수록 그렇게 눅눅한 침대에 점점 더 침잠해갔다. 그 길고 긴 수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날 비 때문에 한층 더 어두워진 천장에 잠식당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푸쉬카르는 힌두교의 성지인만큼 술도 금지일 뿐 아니라, 고기도 금지인 도시이다.
그래서 유명해진 게 갖은 야채 토핑을 넣어서 만든 롤링난이다.
푸쉬카르 메인 스트릿에 자리 잡고 있는 롤링난 가게는
아주 오래전 서태지가 왔다 가기도 해서 한국 사람들에게 더욱더 유명하다.
한국어로 된 간판에, 한국인에게 냉커피도 무료인걸 보니 확실히 인기가 있긴 있나 보다.
그다음 또 한국인들에게 핫한 레스토랑은 아마 지금도 있을 듯한 V.K 뷔페
유명한 이유는 바로 뷔페에 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쳐다도 보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맛의 김치이지만,
고기도 없고, 술도 없는 이 사막 같은 도시에 김치는 한국인들에서 오아시스로 불릴만하다.
모든 게 금지라지만 항상 불법과 편법을 존재하는 법.
우리는 몰래 맥주를 판매한다는 레스토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푸쉬카르의 마지막 저녁을 즐기기 위해 찾아갔다.
우리 일행들의 마지막 저녁이기도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훑어내려 가는데
좀 전에 마약 거래를 끝내고 온 듯이 험악하게 생긴 인도인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아주 은밀하고도 비밀스럽게 귓속말로 치킨? 치킨?이라고 물어보았다.
우리 역시 아주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모종의 거래를 하듯이
귓속말로 탄두리 치킨을 주문했다.
그리고 맥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