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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도씨 Feb 09. 2020

이번 파도, 다음 파도를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Scenes of  Whom : Season 2 Ep 1.

나의 빛을 기록하는 시간.

타인의 빛이 아닌 나의 빛을 찾아나갑니다.

바래지 않는 빛과 색을 찾아서.





Scenes of Whom : 누군가의 장면들


Season 2 Ep 1. 이번 파도, 다음 파도를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 권정혁, 프로 축구선수 편



저는 나이가 들면서 더 행복해 지는 것 같아요.


저는 나이가 들면서 더 행복해 지는 것 같아요.

일단 은퇴를 하고나서 저를 무겁게 누르던 일생의 과제라고 해야하나 그런 걸 하나 벗어버린 것 같고.

음…. 나이들면서 잃어버린 것은 머리숱? 하하.

나머지는 내면적으로 점점 더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운동선수 말고 다른 인생을 살아보지 않을까 싶어요. 한 번 해봤으니까.



축구선수로 시작하고 끝날 때 까지가 삼십년인데, 첫 날 운동했을 때와 마지막 경기를 뛰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 중간에 있었던 일들도.


축구만 하고 젊은 사람들이랑 있다보니 다른 것은 많이 느끼지 못했는데 가족들, 어머니도 나이가 많이 드셨고…. 그냥 영화에서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들이 나이가 들어버린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보면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매 순간 더 값지게 써야할 것 같은 느낌? 그렇게 살지 못할 수도 있죠.

그런데 시간이 더 줄어드는 것을 느끼니까. 삼십년도 한 순간 같으니까 또 삼십년도 금방 갈 수도 있겠다. 뭔가 좀 더 가치 있게 살아야 하지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운동선수 말고 다른 인생을 살아보지 않을까 싶어요.


한 번 해봤으니까.

 

축구선수 중에서 축구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약간 달랐던 것 같아요. 이것도 하고싶고, 저것도 하고싶고 그랬던 것 같아요.  



이번 파도, 다음 파도를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것에 치여서 살지만 꿈이 있으니까 이렇게 계속 방향을 잡고 움직이는 것 같아요. 바다에서 이번 파도, 다음 파도를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적지가 있어야 배가 나아갈 수 있는 것 처럼요.

제 꿈을 누구와 나눈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꿈은 명확했죠. 고등학교 때 인터뷰가 마흔살까지 선수생활 한다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그게 된거죠. 국가대표도 잠깐 있고, 청소년 대표도 다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목표니까 지금도 꿈꾸고 있는 중이구요.



인간은 더 넓은 존재 잖아요.
사회에서 범주화하는 그 배역에 맞춰서 살 필요가 없고,
그걸 자신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사회가 개인에게 너무 ‘너 탓이야’라고 해온 것 같아요. 삶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고, 때로는 잘못된 일이 더 많은 게임인데 사회는 은퇴한 사람은 실패자라는 편견을 만들고, 그런 메세지를 개인에게 내면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편견을 바꾸면 은퇴를 앞둔 운동선수에게도 좋을 것 같고. 이 친구들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들인데 축구선수라는 범주안에 너무 갇혀 있기도 해요.

사실 인간은 훨씬 큰 존재인데. 이런 (범주화)것에 너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고요.

그런데 나를 범주화 할 필요가 없어요. 심연은, 인간은 더 넓은 존재 잖아요. 사회에서 범주화하는 그 배역에 맞춰서 살 필요가 없고, 그걸 자신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번도 저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매일매일이 또 있으니까



Q. 일이 마음대로 되지않을 때가 자주 있으셨나요?


축구를 하면 매일매일 그런 것 같아요. 운동선수 생활을 할 때, 경기전 몸풀기를 하면서 볼을 돌리고 술래를 뽑는 게임을 해요. 거기에 걸리면 내가 실패했다고 느껴요. 진짜 경기도 마찬가지죠. 팀이 이기고 지는 것에는 영향을 좀 덜 받아요. 내 플레이가 실패를 한거냐, 안한거냐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런데 내 플레이가 실패를 했다고 하면 굉장히 영향을 받고 그것도 실패죠. 살면서 매일매일 실패한다는 경험은 일상에서 거의 하기 힘들잖아요.


예상 못했던 일들도 많이 있었죠. 그리고 많이 잃었죠 항상. 밖에서 보면 축구선수들 항상 하는 거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경기중에 한 골을 먹으면 내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고, 가슴이 덜컥하거든요. 많은 걸 잃어버린 것 같고 그렇죠.

그럴 때에는 냉정해지고 침착해지려고 해요. 모든 득실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아닌데. 계속 경험을 했잖아요.

많이 실패하니까. 지금도 실패하면 화가나죠. 나라는 사람은 지기 싫어하고 근성이 있는데. 그런데 반대로 이번에 졌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니까.


매일매일이 또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큰 동요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안되더라도 좀 받아들이거든요.



다만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인간을 다르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데, 운구기일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회는 운이 더 많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한데. 이게 운이냐 운이 아니냐는 모르는 일 같아요. 제가 다쳐서 일 년 동안 쉴 때 티비에서 어떤 강연을 보는데 사회가 운이 안 좋다고 하는 시기에 반대로 개인은 운이 좋은 거다. 사회가 불러주지 않는 것뿐이지 그 시간은 자기의 시간이니까 그 시간에 공부할 수 있는 운이 트인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은 운이 나쁜 적이 없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회의 운이 없더라도 자기만의 그 운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거죠. 다만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인간을 다르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행복에서도 배움을 얻지만 인간의 다양한 경험에서 배움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고난.


이게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지 않나. 싫어서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라도 돌이켜보면 삶에 필요한 과정이었을 수도 있잖아요.



축구자체도 전 종교였던 것 같아요.



노자에 관한 책을 읽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저는 많이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많이 경험하고 싶고. 노자에서 배웠던 게 그런 태도인 것 같아요.

배우려는 삶의 태도가 저에게는 종교였던 것 같고. 축구 자체도 전 종교였던 것 같습니다.


축구에는 루틴이 있잖아요. 얼마만큼 이 루틴을 잘 따라가며 사는지의 문제가 저와 떼어놓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운동을 워낙 어렸을 때부터 했고 삶의 숙제 같은 것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했던 것 같고요. 대학교 때 공부는 이 때가, 이 기회가 아니면 공부를 할 수 가 없다라는 느낌도 있었고.


그런데 저는 공부라기보다는 제가 관심있는 분야를 본다거나 하면서 되게 즐겁게 살았던 것 같아요. 고통을 참고 그런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니까 그 자체로 재밌고. 내가 또 다른걸 하더라도 그게 또 재밌고. 재밌게 살았던 것 같아요.


이 삶도 쉽지는 않다고 항상 느끼고 있고, 이 어려움 속에서도 여태까지 잘 살아 왔다. 얼마만큼 무서운지 알지만 난 여기에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는 것 같습니다.






Illustration by 삼도씨



Seoson 2 Ep 1. 이번 파도, 다음 파도를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 권정혁, 프로축구선수 편



내 안의 빛을 찾아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나의 색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의 여정을 걷든 그것은 변색이 아닌 또다른 색의 챕터로 넘어간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기록을 모아 이번 겨울은 그림과 함께 책으로 편집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이야기와 말이 이 곳에 잠시 머무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 이른 겨울

삼도씨

*위 프로젝트는 스포잇과 함께 진행하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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