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의 미로 속에서 '계획'이라는 허상을 쫓다

알바 잘린 후 쇼펜하우어 철학

by 메리

오후 1시 25분, 평소보다 5분 일찍 퇴근하라는 사장의 말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 날이었다. 실수도 없었고, 사장은 성격이 나빠도 말이 없어 내 일만 잘한다면 꽤 편한 곳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일하는 매니저님은 좋은 분이었고 근무 시간대도 좋았다. 주휴수당까지 챙겨주니, 사장과 함께하는 시간만 조금 견디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다.


폴바셋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친구와 수다를 떨던 중, 친구가 내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한테 문자 왔네." 평소 연락할 사이가 아니었기에 의아해하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경영 악화로 오전 알바를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마라'는 통보였다. 지독하게 매너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답장하지 않았다.


힘들게 구한 자리였고, 적응하는 과정은 아르바이트든 사업이든 고되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달, 이제 겨우 손에 익었다 싶었는데 이렇게 잘려보는 건 또 처음이다. 요즘은 생전 처음 겪는 일이 잦아 덤덤할 법도 한데, 기분이 불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일을 구해야 하는 내 입장은 왜 고려해주지 않는 걸까. 고용주들은 왜 오직 자신의 이득만을 계산하는 걸까. 화가 치밀었지만, 손님이 있어야 할 시간에 주방 구석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사장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그에게도 남의 사정을 살필 여유 따위는 없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름대로 금전 계획도, 사업 계획도 세워두었었다. 고정 수입이 있으니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겠다고 믿었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 개개인의 얽히고설킨 과거와 현재의 인과는 인생을 끝없는 수수께끼로 만든다. 나에게 계획이 있었듯 그에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음에도, 나는 여전히 '계획'이라는 것을 세운다. 어쩌면 계획이라는 단어는 실제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사라져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라는 ‘기생충’의 모순된 대사는 정확한 의미를 가지지만 반대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 어떤 모순도 마찬가지지만 그 부정확함이 적확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단순한 진리를 매 순간 깨달으면서도 끊임없이 계획을 이어가는 것은 인간의 망각 때문일까, 아니면 지독한 집요함 때문일까.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계획이 무너졌을 때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계획이 어긋날 때마다 크고 작은 절망에 휩싸이고 만다.


경제학자는 경제를 맞추지 못한다. 개개인의 선택과 그 결과물이 얽혀 미로가 되는 것은 인생이나 경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제학 이론은 오직 파편적으로만 유효할 뿐이다. 5개년 계획을 수립해도 전염병 하나로 전 세계가 마비되는 것은 거시적 인간사이고, 장기적 수입을 기대했던 아르바이트에서 오늘 잘린 나의 이야기는 미시적 인간사이다. 이런 개별성이 모여 통제 불가능한 미궁을 만들고, 우리는 지도 없는 미로 속에서 '계획'이라는 허상을 세운다. 목표라는 신기루를 향해 달리다 우리는 언제나 좌초된다.


계획은 주로 '소유'를 중심으로 설계되지만,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가변적이다. 소유한다는 것은 언제든 잃을 수 있음을 내포하지만, 우리는 어째서인지 상실을 전제하지 않은 채 계획을 짠다.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로 개념을 쌓아 올리니 그것이 실제 인생에 적용될 리 만무하다. 결국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공한 이들은 행동과 의지의 힘을 강조하지만, 매일같이 불쑥 찾아오는 방해꾼들에 의해 좌절되는 행동과 의지까지 내 탓으로 돌리기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너무나 좁다.


인생의 물살이 세다. 나는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는 되지 못한다. 그저 흐르는 물길을 방향계 삼아, 물살의 세기와 방향에 몸을 맡긴 채 아가미로 숨을 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볼 뿐이다.


피천득 시인은 인생의 말미에서 삶이 '소풍'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소풍의 한복판에 놓인 것이 이토록 치열한 '전투'라면 그 단어가 어울릴까? 앞으로 오직 인생을 정리하는 과업만이 남았다면 나 역시 소풍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빌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 내일의 생계가 걱정인 지금, 내 인생을 소풍이라고 정의하기엔 유희만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