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 않는 떡볶이를 남기지 않는 이유

받는 것이 사랑이라

by 메리

내가 브런치에 쓴 글들을 돌아보니 온통 어둡고 무거운 주제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억지로라도 기뻤던 기억을 길어 올려보려 한다. 사실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약 부작용으로 잠을 설치고 있고, 며칠 전에는 일자리도 잃었다.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불안이 파도치지만, 그럼에도 내가 옳은 방향을 향해 헤엄치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 제법 버틸만하다.


작년까진 제자리걸음 같던 일들이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조금씩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성취는 미미할지라도, "이렇게 가는 게 맞다"라는 감각을 잡으면 삶은 그리 괴롭지만은 않다. 내게 브런치가 그렇다. 방금 전 팔로워가 한 명 늘었다. 내가 멈추지만 않는다면 글도, 삶도 결국 나아질 것이다. 아무도 관심 없을 내 글 위로 기꺼이 멈추어 준 그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할 뿐이다.


좋은 것을 생각하려니 역시 '사랑'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대단한 연애를 하거나 만인의 관심을 받는 건 아니지만, 내 인간관계는 내가 가진 자원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다정하다. 뭐만 갖고 싶다 하면 "언니, 사줄까?"라며 앞서 나가는 친구를 보면 가끔 할 말을 잃는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부자란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자'라고 했다. 내어줄 줄 모르는 이는 아무리 쌓아두어도 가난한 자다. 그런 의미에서 내 친구는 참으로 부유한 사람이다.


반면 나는 제대로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누군가 호의를 건네면 손사래부터 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어쩌면 이건 '되갚을 수 없는 가난'이 남긴 흔적일지도 모른다. 프롬은 가난이 수치스러운 이유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자로부터 '주는 기쁨'을 빼앗기 때문이라고 했다. 줄 수 없기에 받지 않겠다는 마음은 실은 진심이 아니다. 받고 싶고 주고 싶지만, 줄 수 없음에 탄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밀어내는 것은 결국 그에게서 '주는 기쁨'마저 빼앗는 일이다.


언제 형편이 나아질지 모른다는 핑계로 사랑하는 이들의 호의를 거절해 왔지만, 이제는 받는 것부터 잘해보기로 했다.


"받아들이는 행위에서, 그녀는 이미 주고 있는 것이다."


'기브 앤 테이크'를 늘 물질의 등가교환으로만 여겼다. 물건의 값어치를 재단하고 똑같은 무게로 되돌려주려 애썼다. 하지만 친구들이 내게 건넨 건 결코 '물건'이 아니었을 테다. 내 형편이 내일 나아질지, 10년 뒤에나 괜찮아질지 알 수 없지만, 나아진다면 흔쾌히 받고 나아지지 않더라도 감사히 받음으로써 내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법이다.


요즘 유행하는 '금융치료'는 즉각적이지만 단기적인 처방일 뿐이다. 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곧 나를 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사랑을 되돌려주지 못한다고 가난을 탓하기보다, 상대를 향한 기쁨을 온전히 내비치는 연습을 해야겠다.


오늘 저녁, 엄마가 떡볶이를 했다며 나를 불렀다. 나는 사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주는 떡볶이를 남김없이 먹는다. 엄마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