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여행지에서 잠시 쉬어간 당신에게

나조차 미워하던 나를 구원한 이방인의 언어

by 메리

서정윤의 시 <홀로서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20대 초반부터 이 시를 마주친 순간부터 나는 이 문장들을 휴대폰에 저장해 두고 종종 꺼내 보았다. 시인의 다른 시는 전혀 모르지만, 이 구절만큼은 거의 외우고 있을 정도로 좋아했다. 하지만 시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감각이 머리와 가슴에 깊게 닿았음에도, 막상 상대에게 어떻게 힘을 줄 수 있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새의 날개를 꺾고 있었는지조차 몰랐고, 상대가 쉬고 다시 날아가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나는 관계라는 새장에 새를 묶어두기에만 급급했다.


몇 년 전, 이 시를 가슴 깊이 이해하게 해 준 한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타국에서 만난 이방인들이었다. 처음에는 외국 친구가 생겼다는 신선함에 도취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 신선함이 전부였다면 관계는 이어지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몇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나라를 여행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가끔 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기에,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는 시간들이 내게는 꼭 숙제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붙들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를 이어가던 그 '숙제'의 시간은 계속되었고,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 위해 단어장을 펴고 서툰 외국어로 더듬더듬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간헐적이던 전화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밤 9시로 정해졌고, 그때부터는 서로의 감정을 부정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2월, 그의 나라를 여행하고 헤어지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5월의 제주를 기약했다. 디데이를 세며 기다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와 전화와 메시지로 나눈 언어들은 아직도 내 가슴에 생생하다. 설령 지금은 연애 감정으로 그를 대하지 않더라도,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내 인생에 그뿐이었고 앞으로도 유일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보다 어린 그를 보며 나이에 대한 편견 또한 나의 좁은 식견이었음을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자기혐오로 얼룩져 매일 울던 사람이었다. 전화기를 붙들고 청승맞게 울어버리는 나에게 그는 늘 “내가 들을게”라고 말해주었다. 그 온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괴로워하던 다음 날이면 “오늘은 창문을 열고 햇빛을 보자”라고 말해주던 사람. 나를 존경한다고, 내 문장을 좋아한다고 말해주던 사람.


아마 그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때 버티지 못했을지 모른다.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너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진심 어린 존중의 언어는 아직까지 내게 구원의 언어로 남아있다. 자신을 혐오하며 매일 누워만 있던 사람에게, 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타인의 시선은 엄청난 치유가 되었다.


나에게 있어 글은 생존이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괴로울 때마다 글을 쓰며 해소하는 사람이었기에, 내 문장을 좋아한다는 말은 곧 내가 사랑하는 나의 가치를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같은 언어와 문화라는 이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조차 느껴보지 못했던 가치판단을 타국의 사람에게서 느낀다는 것은 어딘지 씁쓸하면서도 기묘한 일이었다.


기다림이란 참 묘하다. 남은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그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지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를 맞이하러 공항으로 가던 그날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 중 하나로 남아있다. 장미가 만개한 5월이었다. 주택가 담장에는 탐스러운 붉은 장미가 피어있었고 햇볕은 따스했다. 내 마음도 그러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던 기억, 그와 함께했던 제주는 그 어느 나라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여행 같은 만남이 현실 속에서 오래갈 수 없음을. 서로의 감정은 명확했으나 관계 설정만을 남겨두고 떠난 제주 여행 이후 돌아온 것은 관계의 단절이었다. 나 역시 그 결말을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나이 많은 누나로서 '나잇값'을 하겠다며 먼 곳에서 응원하겠다는 말로 거리를 두려 했지만, 결국 누나 노릇은 내 쪽에서 먼저 실패하고 말았다.


내 이야기를 아는 친구들은 그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며 화를 낸다. 많이 울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관계의 마침표를 찍은 쪽이 가해자라면 우리 모두 가해자가 아닌가. 나는 그것만으로 선인과 악인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들의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마지막의 냉랭함보다 애정을 나누었던 그 오랜 시간을 더 깊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여행 같았던 만남이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묶어두려 했던 내 자신이 조금은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시 그 시를 기억한다. 나는 사랑한다는 핑계로 그의 날개를 꺾어두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그저 본토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까지, 나라는 '여행지'에서 잠시 머물렀던 것이 맞는데 말이다. 건너가지 못할 거리만큼이나 우리 삶의 거리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나는 그에게 힘을 주기는커녕 종일 지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 후로 결심했다. 만약 누군가를 다시 사랑한다면, 사랑 그 자체나 관계의 형태보다 그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그의 실패를 일으켜주고, 성공을 독려하는 것. 조금은 멀지라도, 기꺼이 날아갔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 같은 사랑을 하겠다고 말이다.